[제16회 LG배 세계기왕전] 숨쉬는 돌

〈제7보〉(84~89)=청록파 시인 조지훈은 "돌에도 피가 돈다"고 했다. '돌의 미학(美學)'이란 수필에서 그는 "돌에는 맹렬한 의욕과 사나운 의지가 있다"라고 묘사했다. 토함산 석굴암을 찾았다가 "숨결과 핏줄이 통하는" 석상(石像)에 전율한 것이다. 바둑 두는 사람들은 흑백의 기석(棋石)을 통해 비슷한 느낌을 자주 받는다. 돌들은 반상에서 시종 물고기처럼 파닥이며 들짐승처럼 뛰어다닌다.

84 호착. 이 녀석은 상대 급소를 향해 발을 날리는 모습이 태권도 유단자 같다. 이 수로 86에 늘면 참고1도 8까지 형세불명이 된다. 85에선 위기를 감지하고 토굴로 숨어드는 다람쥐의 민첩함을 본다. 참고2도 6까지는 A의 단점이 남아 중앙 백을 가두기 쉽지 않다.

86 보강해 백의 의도가 분명해졌다. 중앙을 버리고 좌중앙 일대를 최대한 품어 안겠다는 것. "그건 안 된다"며 달려든 흑87, 노련한 포즈로 좌변과 중앙을 양노림하는 88, 엉거주춤 중앙을 위협하며 빈틈을 엿보는 89가 저마다 거친 숨을 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