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0일 김종철 제주항공 사장은 김포공항에서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을 맞이했다. 권 장관은 제주도에서 열린 '동아시아 교통학회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한 뒤 저가항공사인 제주항공을 이용해 귀경했다. 항공산업 주무 장관이 저가항공을 이용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에 앞서 6월 1일에는 김황식 국무총리가 또 다른 저가항공사인 에어부산을 이용해 지방 행사에 참석했다.
지난 몇 년간 실적 부진에 시달리던 저가항공사들이 올해 들어 본 궤도에 올라선 모습이다. 지난해부터 흑자를 기록하기 시작한 저가항공사들은 올해 고유가와 일본 대지진 등 악재에도 불구하고 견조한 실적을 내고 있다. 국내선 위주의 노선도 해외로 확장하면서 대한항공(003490)이나 아시아나항공(020560)같은 국적사와도 대등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 저가항공 최초로 매출 2000억원 돌파한 제주항공‥국내선 저가항공비중 40% 넘어
국내 저가항공사 가운데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제주항공은 지난 16일 기준으로 올해 매출액이 2000억원을 넘어섰다. 2006년 처음 운항을 시작한 이후 연평균 91%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고,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인 흑자를 내고 있다. 제주항공은 애경그룹 자회사다.
대한항공의 자회사인 진에어도 지난해 처음으로 75억원의 영업흑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 상반기에도 2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매출액도 729억원으로 지난해보다 47% 늘었다. 아시아나항공 계열 에어부산도 지난해 매출액 1208억원, 영업이익 37억원을 거두면서 첫 영업흑자를 신고했다.
저가항공 후발주자인 이스타항공과 티웨이항공도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이스타항공은 매출액이 2009년 443억원에서 지난해에는 1083억원으로 두배 이상 늘었고, 티웨이항공은 지난해 9월 처음 취항한 이후 저가항공사 가운데 가장 빠른 11개월 만에 누적 탑승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이같이 저가항공사의 외형과 수익성이 급격히 호전되고 있는 것은 국내선과 일본·중국 등 탄승률이 높은 인기노선의 운항을 확대하면서 비행기 운영 효율성이 크게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일반인의 저가항공사에 대한 거부감이 꾸준히 해소되고 있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그 결과 국내선 시장의 상당 부분은 이미 저가항공사들이 차지했다. 2006년 2.17%에 불과했던 저가항공사 국내선 점유율은 2008년에 9.72%, 2009년 27.35%, 2010년에는 34.1%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40%를 넘어섰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국내선은 짧은 이동거리 때문에 서비스보다 가격이 큰 결정요인이다. 상대적으로 저가항공사가 선전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동남아시아와 일본 등 단거리 국제선 시장에서도 저가항공사의 선전이 이어지고 있다. 진에어가 상해, 란저우 등 중국 노선 확대에 공을 쏟고 있고, 에어부산은 나리타를 비롯한 일본 시장과 중화권 노선에 특화돼 있다.
제주항공은 올해 국제선 매출이 국내선 매출을 앞서고 있다. 제주항공은 일본 5개, 태국 2개, 필리핀 2개, 홍콩 2개의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일본과 동남아 등 근거리 국제선에서도 시장 재편이 가시화되고 있다"며 "중국 노선에 신규 진출하겠다"고 말했다. 저가항공사의 국제선 노선 점유율은 2009년 0.75%에서 올 상반기에는 3.6%까지 상승했다.
◆ 저가항공사 전쟁터 되는 동아시아 항공길
국내 저가항공사 뿐만 아니라 여러 아시아 지역의 저가항공사들도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에어아시아엑스의 아즈란 오스만-라니 대표는 최근 서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며 한국 시장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에어아시아는 말레이시아를 기반으로 한 아시아 최대 저가항공사로 일본과 베트남 등에 현지법인을 세우며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항공 선진국인 일본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전일본공수가 에어아시아와 손잡고 저가항공사를 만들었고, 일본항공(JAL)도 젯스타와 제휴해 내년 중으로 저가항공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높은 서비스 수준으로 유명한 싱가포르항공도 내년 상반기 중으로 저가항공사를 본격적으로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아시아·태평양항공센터(CAPA)는 현재 12% 수준인 아시아 지역 저가항공사 점유율이 5년 안에 25%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아즈란 에어아시아엑스 대표는 "유럽과 미국은 전체 항공 승객의 40%가 저가항공사를 이용하는데 아시아에서는 이 비율이 20%에 그치고 있다"며 "한국과 아시아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매우 크다. 전체 항공업계보다 3배 정도 빠르게 클 것"이라고 말했다.
◆ 가격 더 낮춰야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저가항공이지만 높은 가격은 걸림돌로 꼽힌다. 국내 저가항공사들의 가격은 대한항공 등 국적항공사의 80~90% 수준이다. 저가항공사들은 각종 이벤트로 정가보다 저렴한 가격의 항공권을 최대한 공급한다는 방침이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반면 저가항공이 일반화된 미국이나 유럽은 저가항공사의 할인율이 50~70% 수준이다. 가격에서 확실하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가항공사 관계자들은 유럽과 한국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한 저가항공사 관계자는 "유럽 저가항공사들은 거점 공항이 아닌 외곽공항을 이용하면서 가격을 낮추는데 우리나라에는 외곽공항 자체가 없기 때문에 이 점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아직 저가항공사들의 규모가 작은 것도 한계다. 국내 저가항공사들은 현재 10대 미만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다. 저가항공사는 보통 비용을 낮추고 이익을 높이기 위해서는 최소 25대의 항공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예비부품을 유지하고, 직원을 교육하고 하는 고정비가 예상 외로 많이 드는데 항공기 숫자가 많아야 고정비를 넘어 이익을 남길 수 있고 항공권도 더 저렴하게 팔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가항공사답지 않은 서비스도 가격을 높이는 요소다. 외국 저가항공사 중에는 짐을 들고 타는 것만으로 추가 요금을 받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국내 저가항공사들은 가격 경쟁력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국적사와 경쟁을 펼치다 보니 서비스도 일반 항공사와 비슷한 수준으로 제공하고 있다.
저가항공사 관계자는 "저가항공은 애초에 서비스를 줄이고 가격을 낮추는 게 목적인데, 요즘에는 저가항공사들도 서비스를 강화하는 추세"라며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데 저가항공사들이 좀 더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