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LG배 세계기왕전] 短命棋

〈제9보〉(94~102)=요즘도 훌륭하지만 전성기 때의 이창호는 정말 약점을 찾기 힘든 기사였다. 포석 감각도 뛰어나고 전투력도 다른 어떤 파이터형 기사들보다 강했다. 특히 끝내기 솜씨는 현대바둑의 패러다임을 한 단계 변모시켰다는 평을 들을 만큼 발군이었다. 하지만 그의 최대 장점이라면 역시 앞서 있는 바둑을 알기 쉽고 깔끔하게 정리하는 마무리 능력이 아닐까.

작품의 완성단계에 거의 도달한 '돌부처'가 용의 눈에 마지막으로 동자(瞳子)를 찍어 넣는 과정을 감상할 차례다. 흑이 ▲에 두어 엉거주춤 중앙 백을 포위한 장면. 이창호는 94를 선수(先手)한 뒤 96으로 '물샐 틈'마저 막아버렸다. 좌변과 중앙에 이르는 거대한 대가(大家) 구축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물론 중앙 백 7점을 과감하게 사석(捨石) 처리하는 과정이 이 작전의 하이라이트였다.

97, 99로 완성된 중앙과 우변의 흑진도 엄청나지만 100으로 자물쇠를 채운 좌변 백진이 그것을 압도한다. 101은 102가 정답. 참고도 ■의 곳에 흑돌이 놓이면 좌변 백진 파괴수단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101은 혹시 "목을 쳐 달라"는 신호가 아니었을까. 과연 이야마는 102가 놓이자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목례와 함께 돌을 거두었다. '이창호 표 마무리'가 만들어낸 기록적 단명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