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은퇴자협회… 막강 단체로 뜰까

"우리나라도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은퇴자가 급증하는 시점이 됐으니 모두 집결해 한목소리를 내는 때가 오지 않겠습니까."

대한은퇴자협회 주명룡 회장(66)은 급속한 고령화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노인층의 세(勢)를 모아 목소리를 내는 '노년층 이익단체'가 조만간 부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02년 1월 대한은퇴자협회(KARP)를 설립한 이후 10년간 줄곧 무급 자원봉사로 협회를 이끌어 왔다. 그가 봉사한 시간은 18일로 총 4만 시간을 넘겼다.

주 회장은 지난 1981년 대한항공 사무장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서 맥도널드 점포를 운영하는 등 식품 사업에 종사했던 이민자다. 1994∼95년에는 뉴욕 한인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후 미국은퇴자협회(AARP) 회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1996년 한인을 위한 KARP를 뉴욕에서 결성했고 회원 2500명 규모로 키웠다.

하지만 1997년 IMF 외환 위기 이후 많은 중장년 가장이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생활고에 시달린다는 고국의 소식을 접하고 한국에서 은퇴자협회 활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제도가 잘 갖춰진 미국보다는 한국서 일하는 것이 보람이 크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2001년 겨울 혼자 귀국한 그는 이듬해 1월 한국에서 대한은퇴자협회를 새로 창립했다. 이 협회의 첫 활동은 연령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고령자를 차별하는 기업에 대항해 미국에서 1967년 연령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게 한 것도 AARP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7년을 주장해 결국 2009년 연령차별금지법을 시행하게 됐죠."

"KARP가 AARP처럼 강력한 압력단체로 성장하기란 쉽지만은 않다"고 그는 예상했다. KARP도 온라인·오프라인 회원을 합쳐 15만명을 넘어섰지만 회비(연 3만원)를 내고 여러 활동에 참여하는 회원은 1000명도 채 안 된다는 것이다. 일부 후원자의 도움과 주 회장이 모금한 돈으로 겨우 이끌어가는 상황이다. 회비(연 18달러)를 내는 회원이 30%에 이르고, 다양한 사업을 통해 연간 1조원이 넘는 예산을 쓰는 AARP에 비하면 걸음마 단계라는 것이다. 국회나 정부를 대상으로 전방위 로비를 벌이는 AARP 수준이 되려면 무엇보다 은퇴자들의 조직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회원들의 태도에도 변화가 일어야 은퇴자 세대의 결집이 가능하다고 주 회장은 말했다. "연령차별금지법을 만들고, 역모기지제도(주택연금)를 시행하게 했지만 회원들은 제 주머니에 들어오는 것이 없으면 별다른 혜택을 못 받는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나 사회를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도 약하지요."

우리나라도 청년 실업으로 세대 간 갈등이 깊어지는 상황이다. KARP는 '노후는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라며 20대부터 은퇴 이후의 삶에 관심이 있는 누구든 회원으로 받고 있지만 젊은이들과 교류는 쉽지 않다. 세대 간 처한 상황과 인식 차이,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주 회장은 여전히 KARP에 희망을 걸고 있다.

"노년층이 정말 기댈 수 있는 곳,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단체는 꼭 필요합니다. 북유럽 선진국을 보면 나라마다 전 인구의 10% 이상이 은퇴자협회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어요. 지난 10년간 씨를 뿌렸으니 KARP도 크게 성장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美 은퇴자협회(AARP)… 50세 이상 권익 대변 "가장 강력한 압력단체"

회원 4000만명을 거느린 미국은퇴자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Retired Persons·AARP)는 50세 이상 연령층의 권익 옹호활동을 펼치는 비영리 단체(NGO)로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압력단체'로 통한다.

미국에서는 'AARP에서 가입통지서 왔어'라는 말은 곧 '50세가 되었다'는 뜻으로 여겨질 정도로 인지도가 높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대통령 다음으로 강력한 권력자가 AARP 사무총장'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50세 이상 장노년층이 AARP라는 조직을 매개로 뭉치면서 강력한 '세대(世代) 이익집단'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노후에도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사회에 기여할 것(to serve, not to be served)'을 목표로 은퇴자 복지 프로그램 운영, 자원봉사 지원, 구직 알선은 물론 라디오·텔레비전 방송과 노인 복지에 관한 연구 지원 등 전방위적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