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백련家 동양화로 中 화단 노크"

"할아버지 거처였던 광주광역시 춘설헌(春雪軒) 뜰 앞엔 매화밭, 모란밭이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매화·모란을 많이 보고 자랐고, 화폭에도 즐겨 담았지요. '화중왕(花中王)' 모란은 부귀의 상징이라 모란 그림은 중국에서도 인기 있어요."

한국 남종화단의 대가였던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1891~1977)의 손자가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화재(畵才)를 중국에 선보인다. 25일부터 베이징 화원미술관(北京畵院美術館)에서, 내달 11일부터는 상하이 미술관에서 개인전 '정중동 고중신(靜中動 古中新)'을 여는 동양화가 허달재(59)씨.

그는 대여섯 살 무렵부터 할아버지로부터 붓 잡는 법을 배웠다. 그의 집안은 조선 후기 서화가 소치(小癡) 허련(許鍊·1808~1893)의 맥을 잇는 호남의 서화(書畵) 명문가. "광주농업고등기술학교 교장을 지낸 할아버지는 제게 그림보다는 서예를 가르치고 싶어하셨어요. 글공부를 많이 해서 우리나라 농업 발전의 기틀을 닦길 바라셨는데, 저는 그림 그리는 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그는 할아버지의 그림을 임모(臨摸·베끼기)하면서 배웠다. 동양화에서는 좋은 그림을 베끼는 것을 공부의 첫 단계로 친다. "그림은 형태가 중요한 게 아니라 '느낌'이 중요하지요. 저는 점차 할아버지 화풍에서 벗어나 제 것을 찾아갔어요. 주위에서 제 그림을 보고 '할아버지 그림과 소재는 같지만 느낌이 다르다'고들 합니다." 이번 전시에 나오는 그림은 모두 36점. 모란·매화·대나무·포도 등 동양화 단골 소재를 한 부분만 클로즈업해서 그리는 '허달재식 화법'으로 재해석했다.

중국 전시는 이번이 네 번째. 2008년 베이징 중국미술관과 선전 화원에서 전시회를 가졌고, 지난해엔 베이징 798예술구의 화랑에서 전시를 열었다.

베이징 작업실과 광주 작업실을 오가며 그림을 그리는 허씨는 "동양화의 전통이 시작된 중국은 내게 동경의 땅이다. 그림뿐 아니라 공자·맹자의 사상, 노장사상에 대한 동경이 뿌리 깊었다. 전통을 고수하되 나만의 새로움을 보여줄 수 있는 그림으로 승부수를 던지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의 이름은 아직 작다. "중국은 수묵화 전통이 강하고 좋은 작가도 많습니다. 게다가 자국 작가를 끔찍이 아끼죠. 외국 작가가 시장에 뛰어들기 힘든 구조예요. 아직은 중국에 이름을 알리는 단계입니다만, 자주 전시를 하다 보면 언젠가 저만의 가치를 보여줄 날이 오리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