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5000원 보상금… 이젠 행복합니다"

"행복합니다."

6·25전쟁 때 전사(戰死)한 오빠에 대해 최근 국가보훈처로부터 '5000원 보상금' 결정을 받은 김명복(63)씨는 19일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보훈처에 계신 분들이 직접 찾아와서 제 하소연을 1시간이나 넘게 들어주셨다"는 것이었다.

전날인 18일 오진영 부산지방보훈청장 등 보훈처 관계자 3명은 경남 김해의 김씨 집을 방문해 '5000원 보상금' 결정에 대해 사과했다.

오 청장과 마주한 김씨가 처음 꺼낸 말은 "제 얘기 좀 들어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이 자리에서 1996년 모친의 유언으로 시작된 '오빠 찾기' 과정을 털어놓으며 울었다.

"보훈처에서 오빠 군번(軍番)을 알아 오라고 해서 10년 수소문 끝에 알아서 갖다 줬다. 그런데 '시효가 지나서 보상금 지급도 유족 인정도 안 된다. 보상금 받고 싶으면 소송하라'고 해서 소송까지 했는데 5000원이라고 하느냐", "나라가 전쟁 유족을 도와줘야지, 힘 없고 아는 거 없다고 그렇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나", "꽃도 못 피워보고 죽은 오빠 목숨 값이 어떻게 국수 한 그릇 값인가…". 김씨의 말을 듣는 내내 오 청장은 "잘못했다" "죄송하다"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19일 김씨의 목소리는 사흘 전 첫 통화 때보다 많이 차분해져 있었다. 그는 "맺힌 말을 하고 나니 그동안의 서러움이 많이 가셨다"고 했다. "이젠 죽어서 엄마, 오빠 볼 낯이 생겼다"고도 했다. 김씨가 오빠를 찾기 시작한 것은 1996년이었다. 전쟁터에 보낸 아들은 소식을 알 수 없고 폭격에 딸 셋 중 둘을 잃어 정신질환에 걸린 어머니가 작고하기 전 정신이 잠깐 돌아와 남긴 말이 "오빠를 꼭 찾으라"였다.

보훈처 관계자들이 김씨의 말을 들어준 시간은 1시간30분 정도였다. 지난 15년간의 말 못할 상처가 1시간30분의 하소연으로 한결 가벼워진 것이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유족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이 나라와 우리 사회가 당신들을 잊지 않고 있으며 고마워하고 있다"는 따뜻한 관심일 것이다. 이날 "행복하다"는 김씨의 말을 들으며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