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 환우 힘내세요" 빨간 튤립(파킨슨병의 상징)의 완주

23일 오후 2시 50분 춘천마라톤 37km 지점. 김인제(52·회사원)씨의 다리에 힘이 빠져 갔다. 금방 쓰러질 것만 같았다. 여기저기 정리하는 환경미화원들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김씨는 멈추지 않았다. 벌써 5시간 50분째다. 김씨는 "다리가 끊어질 것 같다"면서도 "얼마 남았느냐"고 물었다. "5㎞"라고 하자 "끝까지 달리겠다"고 했다. 오후 4시 10분쯤 결승선을 넘은 김씨는 "뛰느라 약 먹을 시간을 넘기는 바람에 막판에 힘이 부쳤다"고 했다.

김씨는 5년째 투병 중인 '파킨슨병 마라토너'다. 김씨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 같은 병을 앓는 환자 중에 운동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며 "내가 완주하는 것을 보며 그들도 용기를 되찾길 바랐다"고 했다. 그의 가슴에는 '긍정, 사랑, 끈기, 환우 여러분 힘내세요'라는 문구가, 등에는 '아자! 아자! 아자! 이겨낼 거야!'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빨간 튤립 무늬도 그려 넣었다. 이 병을 앓은 네덜란드의 한 원예가가 재배한 빨간 튤립에 이 병을 처음 보고한 파킨슨 박사의 이름을 붙이면서 빨간 튤립은 파킨슨병을 상징한다.

2006년 말 확진을 받았을 땐 절망뿐이었다. 하루에 7~8번 찾아오는 통증은 지옥 같았다. 서너 번씩 잠을 깼다. 약 기운이 떨어질 때면 바늘 수십 개가 뼈마디를 찌르는 듯했다. 2007년 말 우울증까지 찾아왔다.

체조와 스트레칭, 108배로 우울증을 이겨내고 2009년 마라톤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1.5㎞도 못 뛰었지만, 그해 4월 처음 10㎞ 완주에 성공했다. 108배로 생긴 근력 덕이었다. 그 뒤 하프 마라톤과 산악 마라톤을 4회씩 완주했다. 첫 출전한 작년 춘천마라톤에서는 풀코스를 뛰었다. 기록은 5시간56분19초였다.

김씨는 반년 전부터 주말마다 4시간씩 등산을 하고 왕복 20km를 달리며 올해 대회를 준비했다. 김씨는 "운동을 많이 하면 아파서 잠에서 깨는 일이 줄어 가족 걱정도 덜 수 있다"고 했다. 김씨에게 마라톤은 자신과 가족, 같은 병을 앓는 환자들이 겪는 고통의 시간을 함께 줄여주는 '투병의 버팀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