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안락사를 부탁해" 천재 마술사의 애절한 소망

침대 위 한 남자를 보여주며 영화는 시작된다. 그의 이름은 이튼(리틱 로샨). 과거 세계 최고의 마술사였으나 공연 중 사고로 전신마비가 돼 14년째 기계에 의존해 살고 있다. 지금은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인기 디제이(DJ)다. 그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그가 장애인들 앞에서 한 연설은 시대의 명연설로 불린다.

그의 옆엔 한 여자가 있다. 아름다운 간호사 소피아(아이쉬와라 라이)는 12년째 그를 돌보고 있다. 머리를 감는 것도 양치질도 식사도 약도 주사도 모두 소피아가 챙겨준다. 여자는 헌신적이고, 남자는 장애를 완전히 극복한 듯 보인다.

이런 완벽한 현실은 어느 날 오후 갑자기 무너진다. 이튼이 변호사인 친구 데비아니(쉐나즈 파텔)를 불러 "법원에 안락사를 청원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이제까지 잘 견뎌 왔는데 갑자기 왜 이러냐"고 말하고, 신문을 통해 안락사 청원을 알게 된 소피아는 "어쩜 한 마디도 상의하지 않았냐"며 분노한다. 라디오 방송 청취자들도 "반대한다"고 전화한다. 과연 이튼은 자신이 원하는 '존엄한 죽음'에 다가갈 수 있을까.

최근 국내 극장가에서 인기를 끈 '세 얼간이'에 이어 또다시 찾아온 A급 인도 영화다. 인도 서해안의 휴양지 고아(Goa)에서 찍은 자연 풍광과 이튼의 유럽풍 저택 등 아름다운 영상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가운데, 과감한 클로즈업 장면이 인물의 복잡한 내면을 성공적으로 그려낸다. 안락사 재판이라는 소재만 보면 지루할 법도 한데, 속도감 있는 전개와 중간중간 등장하는 마술쇼 장면 덕에 무척 재미있다.

발리우드 (Bollywood·인도 옛 봄베이와 할리우드의 합성어) 영화답게 뮤직비디오 같은 음악 장면도 적절히 사용됐다. 영화에 깔린 옛 팝송 '스마일(smile)'과 '왓 어 원더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를 듣고 있노라면 이 노래들이 왜 명곡인지 다시 느낄 수 있다.

후반부에 굳이 언급되지 않아도 될 이야기들이 끼어들며 다소 늘어진다는 점이 아쉽다. 2007년 102분짜리 영화 '사와리아'를 만들었다 관객에게 외면당했던 산제이 릴라 반살리 감독이 길게 늘어지는 인도 영화 관습과 타협했다는 평가다.

'청원'은 인도 최대 위성TV가 주최한 '지 시네 어워드(Zee Cine Award)'에서 남우주연상·여우주연상·미술상을 받는 등 인도에서 영화제마다 상을 휩쓸었다. 126분. 11월 3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 이것이 포인트

#장면
이튼이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왓 어 원더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를 부르는 장면. 노래 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이튼의 추억과 표정, 풍광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대사
“인생은 짧습니다. 그러니까 틀을 깨세요. 빨리 용서하고 진실로 사랑하고 즐거웠다면 후회하지 마세요.” (안락사 재판을 마치고 판결을 기다리는 이튼이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면서)

#해외평
“삶, 그 자체가 얼마나 멋진 것인지를 영화로 표현한 최고의 작품”(뉴욕타임스)

#이런 분들 보세요
인생의 본질을 건드리면서도 영상미와 재미를 거머쥐는 발리우드 영화의 상승세를 느끼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