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8000 神들의 땅… 무진장한 神話의 보고
입력 : 2011.10.25 03:06
[길 위의 인문학] 신화와 상상의 섬 제주
삼성혈·궤눼깃당·김녕사굴… 한발한발 신화의 혈맥 짚어 "자연자원에만 의존 말고 이야기 자원 발굴 나서야"
'유명한 관광지만을 교묘하게 피해 다니기'로 소문난, 그러나 '그런 일정만으로도 사람을 오묘하게 감동시키기'로 이름난 '길 위의 인문학'팀이 이번에 선택한 곳은 제주였다. 200만년에 걸쳐 생성된 이 화산섬은 돌, 여인, 바람뿐만 아니라 풍요로운 신화의 땅이었다. 일만팔천의 신(神)들이 운집한 환상적 공간이자 광대한 이야기 자원이 매장된 문화 콘텐츠의 보고(寶庫)였다.
조선일보·국립중앙도서관·교보문고가 공동 주최하는 '길 위의 인문학' 탐방단 60여명은 20~22일 '신들의 섬, 상상의 섬 제주를 읽다'를 주제로 관광객은 상상치도 못할 신화의 혈맥을 짚었다. 20일 오전 시조신화의 발원지인 삼성혈을 시작으로 궤눼깃당, 김녕사굴, 송당본향당을 차근차근 밟아가는 여정은 사뭇 진지했다.
신화학자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가 지역에 얽힌 신화의 내용과 의미를 설명하는 동안 청중들은 주술에 걸린 듯 과거로 빨려 들어갔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하던 그것이 실은 현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 감응했기 때문이다. 신화는 감성적·우회적 방식을 주로 택하고 문제에 대한 대안을 상징적으로 제시하는데, 그 암호를 해독하는 안목이 그동안 우리에게 없었던 것이다.
조선일보·국립중앙도서관·교보문고가 공동 주최하는 '길 위의 인문학' 탐방단 60여명은 20~22일 '신들의 섬, 상상의 섬 제주를 읽다'를 주제로 관광객은 상상치도 못할 신화의 혈맥을 짚었다. 20일 오전 시조신화의 발원지인 삼성혈을 시작으로 궤눼깃당, 김녕사굴, 송당본향당을 차근차근 밟아가는 여정은 사뭇 진지했다.
신화학자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가 지역에 얽힌 신화의 내용과 의미를 설명하는 동안 청중들은 주술에 걸린 듯 과거로 빨려 들어갔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하던 그것이 실은 현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 감응했기 때문이다. 신화는 감성적·우회적 방식을 주로 택하고 문제에 대한 대안을 상징적으로 제시하는데, 그 암호를 해독하는 안목이 그동안 우리에게 없었던 것이다.
첫날밤 정 교수의 강연 '신화, 잃어버린 상상력을 복원하라'는 그 명령형 타이틀만큼이나 탐방단을 휘어잡았다. 유사성을 지닌 동·서양 신화를 비교하며 상상력조차 서양 신화에 침식된 우리의 의식을 꼬집을 때 참석자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신화를 통해 잃어버린 우리의 상상력을 복원하여 정체성을 수립하고, 서양의 상상력과 조화를 이루어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하자는 게 강연의 골자였다.
가수 김현성은 공연 도중 "농작물이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자라듯 숨겨진 인문학 유적지는 탐방객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피가 돈다"는 뼈있는 멘트를 했다. 그가 이중섭 사후 60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그 사내 이중섭'과 일본의 아내에게 부친 화가의 애절한 편지를 바탕으로 작곡한 '나의 상냥한 사람이여'를 노래할 때 테이블 곳곳에서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이튿날 오전 한라산 영실의 오백나한상에 오른 탐방단은 곱게 물든 단풍과 기암괴석의 조화에 연방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 수려한 풍광 속에 숨은 신화 속에서 고대 여신사회에서 남신사회로의 지위 변환에 관한 상징을 접한 탐방단은 오후 서복전시관에 들러 진시황 시절로 역사의 시침을 조정했다. '서귀포'의 지명이 신화 속 낙원과 명약을 찾아 제주로 온 서복이 돌아간 데서 유래한 것도 대다수가 몰랐던 사실이었다.
감귤박물관 강연에서 소설가 김인숙은 제주와 관련된 한국 현대소설을 예로 들며 "신화가 가장 강력하게 탄생하는 지점은 아름다운 현실이 아니라 가장 잔혹한 현실의 한복판"이라 언급했다. 전날 정 교수가 기록되지 않은 역사의 공백을 신화적 해석으로 메웠다면, 그녀는 신화가 미처 드러내지 못한 이야기의 틈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채우는 과정을 밝혀 청중의 갈채를 받았다.
탐방자는 연령 폭이 15세부터 70세까지 다양했다. 관련 도서 감상문을 포함한 지원서 심사와 사전 강의를 거쳐 엄선되기 때문에 '지원 삼수생'들이 절반이었다. 며칠 뒤 입대를 앞두고 어머니와 참석한 최준식(20)군은 "한걸음 매순간이 소중하고 신화는 인터넷 게임 속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실제 현장 속으로 들어온 듯하다"며 감탄했다. 대구에서 온 안송자(55)씨는 남편 손을 잡고 "이런 고품격 탐방은 일평생 한 번 있는 행운"이라며 활짝 웃었다.
마지막 날엔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의 돌'을 주제로 꾸민 돌문화공원과 물영아리 오름습지를 방문하는 것으로 일정을 끝냈다. 이번 답사는 그동안 자연자원에만 의존하던 제주의 관광자원을 정신적 자원으로까지 확장시켜 스토리 자원의 발굴과 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설 시기임을 환기시켰다. 서양 신화에 전도된 우리 상상력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나아가 동양 신화와 상상력을 복구하는 작업에 제주가 큰 자산임을 일깨운 시간이었다.
'길 위의 인문학'은 지난 3월 수원 화성 탐방을 시작으로 총 14회의 일정 중 12회를 마쳤다. 오는 11월 11~12일 '천년의 고려대장경을 만나는 합천'과 11월 26일 남한강 유적지를 방문하는 원주를 끝으로 올해의 대장정을 마무리하게 된다.
가수 김현성은 공연 도중 "농작물이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자라듯 숨겨진 인문학 유적지는 탐방객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피가 돈다"는 뼈있는 멘트를 했다. 그가 이중섭 사후 60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그 사내 이중섭'과 일본의 아내에게 부친 화가의 애절한 편지를 바탕으로 작곡한 '나의 상냥한 사람이여'를 노래할 때 테이블 곳곳에서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이튿날 오전 한라산 영실의 오백나한상에 오른 탐방단은 곱게 물든 단풍과 기암괴석의 조화에 연방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 수려한 풍광 속에 숨은 신화 속에서 고대 여신사회에서 남신사회로의 지위 변환에 관한 상징을 접한 탐방단은 오후 서복전시관에 들러 진시황 시절로 역사의 시침을 조정했다. '서귀포'의 지명이 신화 속 낙원과 명약을 찾아 제주로 온 서복이 돌아간 데서 유래한 것도 대다수가 몰랐던 사실이었다.
감귤박물관 강연에서 소설가 김인숙은 제주와 관련된 한국 현대소설을 예로 들며 "신화가 가장 강력하게 탄생하는 지점은 아름다운 현실이 아니라 가장 잔혹한 현실의 한복판"이라 언급했다. 전날 정 교수가 기록되지 않은 역사의 공백을 신화적 해석으로 메웠다면, 그녀는 신화가 미처 드러내지 못한 이야기의 틈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채우는 과정을 밝혀 청중의 갈채를 받았다.
탐방자는 연령 폭이 15세부터 70세까지 다양했다. 관련 도서 감상문을 포함한 지원서 심사와 사전 강의를 거쳐 엄선되기 때문에 '지원 삼수생'들이 절반이었다. 며칠 뒤 입대를 앞두고 어머니와 참석한 최준식(20)군은 "한걸음 매순간이 소중하고 신화는 인터넷 게임 속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실제 현장 속으로 들어온 듯하다"며 감탄했다. 대구에서 온 안송자(55)씨는 남편 손을 잡고 "이런 고품격 탐방은 일평생 한 번 있는 행운"이라며 활짝 웃었다.
마지막 날엔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의 돌'을 주제로 꾸민 돌문화공원과 물영아리 오름습지를 방문하는 것으로 일정을 끝냈다. 이번 답사는 그동안 자연자원에만 의존하던 제주의 관광자원을 정신적 자원으로까지 확장시켜 스토리 자원의 발굴과 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설 시기임을 환기시켰다. 서양 신화에 전도된 우리 상상력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나아가 동양 신화와 상상력을 복구하는 작업에 제주가 큰 자산임을 일깨운 시간이었다.
'길 위의 인문학'은 지난 3월 수원 화성 탐방을 시작으로 총 14회의 일정 중 12회를 마쳤다. 오는 11월 11~12일 '천년의 고려대장경을 만나는 합천'과 11월 26일 남한강 유적지를 방문하는 원주를 끝으로 올해의 대장정을 마무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