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LG배 세계기왕전] 妥協이후

〈제4보〉(46~65)=바둑게임 창안자를 떠올리며 항상 탄복하는 것은 패(覇)라는 난제를 최대한 지혜롭게 해결했다는 점이다. 동형(同型) 반복의 딜레마를 넘지 못하면 애써 만든 게임 자체를 폐기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른 곳에 한 번 응수시킨 뒤에만 되딸 수 있다는 기발한 규칙이 바둑의 묘미를 열 배는 더 풍성하게 만들었다. 불굴의 도전정신과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바둑을 인류사상 최고의 게임으로 탄생시킨 원동력이다.

흑▲의 팻감이 등장하면서 흑백 간의 흥정은 전국화·입체화한다. 흑은 우하귀 패를 이긴 뒤 53에 끊어 우변에 거대한 집을 만들려는 야심을 품고 있다. 좌상의 수순들은 우하귀 패를 이기기 위한 대리전일 뿐이다. 패가 지닌 예측 불허의 마성(魔性)에 홀리지 않으려면 고도의 계산력과 정밀한 수읽기 능력이 필요하다.

52까지 된 후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했는지 53 절단을 결행한다. 53으로 참고도 1 이후 5때 백이 다시 우하귀 패를 때릴 텐데, 좌상귀엔 아직도 A 등 백의 팻감이 여전히 많다. 57(패때림)까지는 일단 외길. 후속 팻감이 안 보이자 백은 58의 타협안을 제시했고, 흑도 패를 해소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문제는 하변 백의 생사인데…. (57…■, 5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