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부모들, 자식에 "생활비 달라" 소송 급증

이모(72) 할머니는 경기도 포천의 아들 명의 집에서 혼자 산다. 15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10년 넘게 아들(46) 부부와 함께 살았다. 하지만 2년 전 아들 부부는 "어머니가 생활비를 너무 많이 쓴다"며 불평하더니 할머니만 남기고 떠났다.

할머니의 한 달 수입은 기초노령연금 9만원이 전부다. 고혈압과 당뇨 등 노인질환도 있지만 병원에 갈 엄두도 못 낸다. 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아들에게 "생활비를 조금만 보태달라"고 연락했지만, 아들은 "다른 사람의 농사일을 거들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시니 혼자서 벌어 사세요"라며 거절했다.

막막해진 할머니는 결국 지난해 6월 부양료 신청 소송을 냈다. 의정부지법은 올해 6월 "비록 아들 명의 주택에 이씨가 혼자 살고 있지만, 다른 사람의 농사일을 도와줄 수 있다고 해서 온전히 혼자서 살아갈 정도의 생활 능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아들 부부는 어머니에게 매월 30만원씩 부양료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고령의 부모가 자식들에게 생활비를 요구하는 '부양료 신청 사건'이 급증하고 있다. 자식들이 생활비와 의료비 등의 지급을 거절한 경우, 부모가 법원에 자식들을 상대로 소송을 내는 것이다. 2002년 68건이었던 전국 법원의 부양료 신청 사건은 2010년 203건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그래픽 참조〉 법원 관계자는 "노인 인구가 증가하면서 노인들이 자식들에게 부양료 소송을 내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김모(73) 할아버지도 직업·소득 없이 노환을 앓고 있어 자식들을 상대로 소송을 낸 경우다. 고혈압, 심장질환 등을 앓고 있는 김씨는 "기초노령연금 외에 소득이 없다"며 두 딸과 사위, 아들에게 생활비를 요구했지만 자식들은 "우리도 먹고살기 어렵다"며 거절했다. 법원은 지난 12일 "자식과 사위에게는 김씨를 부양할 의무가 있지만, 이들의 경제적 조건을 고려해 부양료를 정한다"며 김씨의 자식들과 사위에게 각각 10만~15만원의 부양료 지급을 명령했다.

전처소생의 자식들에게 부양비를 달라고 한 경우도 있다. 양모(71) 할아버지는 지난 2월 전처가 낳은 두 딸과 아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국민연금, 기초노령연금 외에는 딱히 수입이 없어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결국 두 딸과 아들은 지난 7월부터 매월 각각 15만원씩을 아버지 양씨에게 보내주고 있다.

노인들이 자식들을 상대로 부양료 소송을 내는 주된 이유는 '생계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신청자는 70세 이상의 중·하위 계층 노인으로, 특별한 소득이 없고 노환을 겪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양 능력이 인정되는 자녀가 있는 경우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월 최대 43만6044원 지급)에서 제외돼 기초노령연금 약 9만원이 유일한 수입이다.

자식이 아예 없다면 50여만원 정부 보조를 받을 수 있지만, '있는 자식이 부양하지 않는 경우'에는 법적으로 '부양자(자식)'가 있기 때문에 국가 지원조차 못 받고 더욱 힘들게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

서울가정법원의 한 판사는 "노인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불효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노인들을 위한 국가적·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