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듯한 그들… 그래도 형제국 터키 돕기엔 열성

"중학생이던 6·25 때 고향 집 앞에서 인민군이 죽인 터키군 시신 2구를 땅에 묻었어요. 서양 사람이니 그냥 미군이라고 생각했죠. 전쟁이 끝난 뒤에야 터키군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런 터키에서 지진으로 1000여명이 죽었다는데 가만 있을 수 없죠."

강성주(76) 강남미래발전협의회 회장이 품속에서 조심스레 녹색 봉투를 꺼내며 말했다. 봉투 안에는 강남미래발전협의회 회원 200여명이 터키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십시일반 모은 성금을 환전한 미화 1000달러가 들어있었다.

지난 23일 오후 발생한 규모 7.2의 강진으로 터키에서는 건물 920채가 피해를 보고 10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표 5㎞ 밑에서 지진이 발생해 피해가 컸다.

이들은 지진 소식을 듣고 성금을 모으기로 했다. 성금 액수는 113만원. 1인당 평균 5000원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이들에겐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회원 90% 이상이 수서 지역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노인으로 대부분 기초생활수급 대상자 등 어렵게 사는 처지다. 단돈 1000원도 아쉬운 사람들이 모은 천금 같은 성금이다. 강 회장은 "6·25 때 700명이 넘는 터키군이 우리를 위해 목숨을 잃었다"며 "어린 시절 6·25를 겪은 회원들이 다들 어려운 형편에도 '형제의 나라'인 터키를 위해 성금을 내는 데 기꺼이 동참했다"고 말했다.

전영자(여·68)씨는 36㎡(11평) 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기초생활수급자다. 정부에서 나오는 35만여원 가운데 임대료 6만5000원과 관리비 8만여원을 내면 생활비로 남는 돈은 고작 20만원 정도이다. 전씨는 "내 살림이 어렵지만, 집이 무너지고 가족을 잃은 터키 사람들의 어려움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터키는 6·25 때 우리를 살려준 유엔군이잖아요"라고 했다.

성금 모금에 동참한 이수길(68)씨도 임대아파트에 산다. 아내는 류머티즘 관절염과 허리 디스크, 고혈압을 앓고 있으며 장남은 뇌병변으로 지체 장애 1급이다. 한때 고향인 부산에서 직원 30명의 제법 탄탄한 건설업체도 운영했지만 사업에 실패했다. 이씨와 큰아들 앞으로 나오는 정부 지원금 55만원과 쌀 1가마가 유일한 수입이다. 이씨는 "터키 국민이 어렵다는 얘기를 듣고 쌈짓돈을 꺼냈다"고 했다. 이들과 터키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들은 6·25전쟁 60주년인 지난해에도 110여만원을 모아 터키 재향군인회에 전달했다. 터키 재향군인회는 이 돈을 6·25 참전 터키군 5명에게 나눠줬다.

지난해 11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맞춰 한국을 찾은 참전 터키군 18명에게는 한국을 둘러보는 데 쓰라며 60만원을 모아 전달했다. 60만원을 받은 터키군 18명은 "손자·손녀들에게 우리가 목숨 바쳐 지킨 한국의 기념품을 가져다줘야 한다"며 볼펜 등 학용품을 사 갔다. 이 소식이 터키에 알려지자 터키 대사관은 대통령과 터키 대사 명의로 감사패와 감사 서한을 보내오기도 했다.

김윤문(68)씨는 "일본에서 지진이 났을 때도 전 국민적인 도움을 줬다"며 "우리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운 터키를 모른 체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돈이 적어서 미안스럽다"는 이들의 성금 113만원은 조만간 터키대사관에 전달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