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코리아·인사이트 펀드에 이은 승자의 저주 3탄? 애물단지 '자문형 랩'

올 초 큰 인기를 끌었던 '자문형 랩'(투자자문사가 골라주는 주식에 집중 투자하는 계좌)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올 초만 해도 6개월 수익률이 20~30%에 달했던 자문형랩이 지난 8~9월 폭락장에서 그 이상을 까먹었기 때문이다.

이제 자문형랩은 환호가 아닌 원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자산가들의 뭉칫돈이 몰리면서 몸집도 9조원 넘게 커졌다가 지난 8월 말에는 7조원대로 쪼그라들었다. 최근 한 달 상승장에서 IT주나 내수주 등에 투자해 손실 폭을 좁히고는 있지만, 고객들의 반응은 아직 냉랭하다. 한 증권사 강남지점 PB는 "요즘 자산가들은 자문형랩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미 가입한 고객들은 주가가 오르면 본전 찾을 생각만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자문형랩의 추락이 예고돼 있었다고 말한다. 몇몇 종목에 집중해 짧은 기간에 고수익을 좇는, 이른바 '모멘텀(momentum·상승 동력)' 투자 방식은 상승장에선 화려한 수익을 내지만 위기가 찾아오면 크게 고꾸라지기 때문이다.

◇승자의 저주

자문형랩의 추락은 요즘 업계에서 '바이코리아'와 '인사이트' 펀드에 이은 '승자의 저주' 3탄으로 불린다.

1999년 투자업계의 승자는 '국민 펀드'로 불렸던 바이코리아 펀드였다. 외환 위기 직후 외국인들이 한국을 떠날 때, '한국 주식을 사자(Buy Korea)'는 취지로 출시돼 3개월 만에 12조원까지 덩치를 불렸다. 그해 말 코스피지수가 40% 상승할 때 이 펀드는 70%의 수익을 내며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2000년 IT 버블 붕괴로 시장이 무너지자 '꼴찌 펀드'로 전락했다. 대량 환매 사태가 이 펀드에 편입된 종목의 주가를 끌어내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2007년 미래에셋자산운용이 "돈이 되는 곳이라면 특정한 자산군에 100%까지 투자하겠다"고 만든 인사이트 펀드는 박현주 회장의 명성에 힘입어 출시 일주일 만에 3조원을 끌어모았다. 사람이 너무 몰려 가입금액을 제한하기까지 했던 이 펀드는 2008년 금융 위기를 맞으며 반 토막 났다. 중국에 '집중' 투자를 한 것이 패착이었다.

자문형랩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올 초 브레인·케이원 등 유명 펀드매니저가 세운 투자자문사들이 만든 자문형랩 수익률이 연 100%대에 이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뭉칫돈이 몰렸다. 자문형랩 잔액(평가금액)은 매달 수백억원씩 늘어 지난 5월엔 9조원을 돌파했다. 코스피지수가 1900~2200 사이를 오갈 때였다.

그런데 최근 수익률은 처참하다. A대형 증권사가 판매한 자문형랩 40여개 상품의 최근 6개월 수익률은 마이너스 24%였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하락률 16%보다 손실이 더 컸다.

◇'모멘텀·쏠림 투자'의 한계

전문가들은 1등 상품의 극적인 성공과 몰락에는 '모멘텀 투자'와 '쏠림 투자'의 한계가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한다.

모멘텀 투자란 상승 흐름을 타는 대상에 올라타서 투자한 뒤, 주가가 빠질 때는 재빨리 빠져나와 고수익을 추구하는 투자기법이다. '쏠림 투자'는 특정 자산군에 집중 투자하거나 한 상품에 투자자들이 쏠리는 것을 말한다. 이런 투자방식은 상승장일 때 고수익을 낼 가능성이 크지만, 하락장에선 더 큰 손실이 난다.

인사이트 펀드는 중국에 쏠림 투자를 했고, 자문형랩은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으로 대표되던 주도주에 집중 투자했다. 바이코리아 펀드는 덩치가 너무 커서 대량 환매가 수익률 하락을 유도했다.

최방길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대표는 "모멘텀 투자를 하려면 시장의 방향을 그때그때 정확히 예측해야 하는데, 어떤 전문가도 그 방향을 예측하기 쉽지 않다"며 "모멘텀 투자를 해서 성공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분산투자와 장기투자로 대표되는 정통 방식의 투자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새삼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자문형 랩

랩(Wrap account)은 증권사가 고객이 원하는 대로 주식·채권·펀드 등 다양한 금융상품에 투자해주는 맞춤형 종합관리계좌를 말한다. 그중 '자문형 랩'은 투자자문사의 자문을 받아 운용되는데 국내에서는 주로 자문사가 골라준 주식 10~15개 종목에 집중투자하는 형태로 판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