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만 재일교포 중 첫 오페라 가수 "노래만 잘하면 못 오를 무대 없어"

목소리가 유난히 고왔던 소녀는 노래하는 걸 좋아했다. 조그만 입을 오물거리며 일본 동요를 불렀고, 가족모임이 열리면 나서서 어른들이 좋아하는 유행가를 불렀다. '제일 잘하는 노래를 평생 하려고' 소프라노 가수가 된 소녀는 작년 8월 일본 도쿄 신국립극장에서 열린 태평양음악축제(PMF)에서 오페라 '라보엠'의 아리아 '내 이름은 미미'를 능숙하게 소화해냈다.

이름은 지에 리 사다야마(31·한국명 이천혜). 아버지는 경북서 태어나 세살 때 일본으로 간 재일교포 기업인이다.

돗토리현에서 태어난 그녀는 히로시마 조선학교에서 중·고교 과정을 마쳤다. 그가 31일 저녁 서울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독창회를 갖고, '라보엠'의 아리아와 이탈리아·프랑스 가곡 등 8곡을 선보인다. 한국에서 홀로 무대에 서는 것은 처음이다. 그녀의 한국후원회장을 자임한 오재희 전 주일대사는 "70만 교포에서 정통 오페라 가수가 나온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PMF는 신진 음악가를 발굴하기 위해 번스타인이 1990년 삿포로에서 시작한 음악축제. 작년 PMF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맡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수석지휘자 파비오 루이지(52)는 14년 만의 오페라 성악 오디션에서 '내 이름은 미미'를 부르는 동영상을 보고 당시 런던에 있던 그녀를 점찍었다. 44대1의 경쟁률. 그녀와 함께 무대에 선 나머지 출연진 100여명은 모두 일본인이었다. 한국 국적인 그녀는 "할아버지·아버지 세대와 달리 나는 일본에서 차별당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음악계는 노래만 잘하면 기회를 주지요. PMF 때도 주역인 나를 일본인 동료들이 존중해줬어요."

한국에서는 아직 무명이지만 재작년에는 밀라노 시립음악학교에서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친 후 영국 찰스 황태자 주최 행사에서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를 불렀다. 그녀는 "노래만 잘하면 세계 어디서든 인정받을 거란 자신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