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장학금 할머니(숨진 둘째아들 다니던 高大에 장학회 설립), 67억 전 재산을 내놓다

농장에서 젖소를 키우며 우유를 팔아 장학 기금을 댄 세월이 33년. 그동안 지급한 장학금은 3억원을 넘는다. 학생 80여명이 명훈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다. 현재 홍원농장 대표로 있는 사위도 명훈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다. 문 전 대표는 "매년 명훈이의 후배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세월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겠다"며 "어느새 명훈이 같은 아들, 딸이 이렇게 늘어났다"고 말했다.

이들은 매년 3월 농장에 모여 새 장학회 회원을 맞는 잔치를 벌인다. 여름이면 농장을 찾아 일을 거드는 것도 명훈장학회 전통이다. 문 전 대표를 도와 젖소 사료로 쓰는 옥수수를 베고 우유를 짠다.

"하늘에 있는 명훈이도 이 어미를 칭찬해 줄 거예요."

지난 28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본관 총장실에서 67억원 상당의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홍원농장 땅(9200여평)을 장학금으로 기증한 문숙(여·85) 홍원농장 전 대표는 34년 전 가슴에 묻은 둘째 아들 이명훈(당시 20세)씨를 떠올리며 눈가를 훔쳤다. 아들의 이름을 따 만든 '명훈장학회' 회원들이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아들은 지난 1977년 고려대 농과대학에 다니다 불의의 사고를 당해 숨졌다. 평안남도 용천 출신으로 6·25전쟁 때 맨손으로 내려와 남편 이용준씨와 함께 악착같이 일군 화물 운송업이 자리를 잡고 행복감을 느끼기 시작하던 때였다.

몇 달 뒤 문 전 대표는 남편과 함께 사업을 정리하고 화성으로 내려가 농장을 차렸다. 이듬해 명훈장학회를 설립하고 고려대 농과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 사업을 시작했다. 살아있으면 듬직한 선배가 됐을 아들을 대신해 아들 후배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서였다.

명훈장학회 회원들도 문 전 대표의 뜻을 이어 기부를 시작했다. 회원들은 매년 십시일반으로 500만∼700만원 정도 돈을 모아 장학회에 보탠다. 명훈장학회 회장으로 있는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이우균 교수는 "매년 정기적으로 모이는 것뿐 아니라 우리가 받은 것을 사회에 돌려주는 것이 문 전 대표의 뜻을 잇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의 큰손자도 결혼식 축의금 전액을 장학회에 보탰다.

지난해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문 전 대표는 남은 재산을 모두 기증할 결심을 굳혔다. "33년간 장학회 사업을 지켜본 가족이라 모두 내 뜻을 환영했어요. 좋은 일, 장한 일 한다고 기뻐해줬고."

이날 기증식에는 명훈장학회 새 회원이 된 생명공학부 3학년 최상필(24)씨도 참석했다. 문 전 대표는 최씨 손을 꼭 쥔 뒤 용돈 10만원을 건넸다. "네가 올해 들어온 내 새 아들이구나."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너도 졸업하면 꼭 기부하라는 뜻으로 주는 거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