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운동할 시간없으니… 건강 챙기려면 걸출(걸어서 출근) 해야죠"

서울시청에서 일하는 최홍연(42) 과장은 두 달 전부터 하루에 1만5000보씩 걷고 있다. 출퇴근할 때 40분~1시간 정도 걸리는 지하철 네 정거장거리를 걷고, 시청 12층에 있는 사무실은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으로 올라간다. 최 과장은 "계산해보니 생활 속에서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안 타면 하루 60층 높이를 오르게 되더라"며 "헬스장에 나가려니 따로 시간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오히려 돈만 낭비하는 것 같아 걷기 운동을 택했다"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에 사는 김태하(55)씨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문래동에 있는 사무실까지 걸어 다닌 지 3년이 넘었다. 전자부품회사를 운영하는 그는 "아내는 수영장이나 헬스센터에 다니면서 몸 관리를 하는데 나는 운동할 시간도 많지 않고 저녁에 술자리도 자주 있다"면서 "건강을 챙기려면 출퇴근할 때 걷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씨는 아침 7시면 청바지에 점퍼, 운동화 차림으로 나와 40분쯤 걷고 회사에 도착해 정장으로 갈아입는다. 업무를 마치면 다시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집에 간다. 김씨는 "걸어 다니면서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덤으로 얻었다"며 "차 타고 다닐 땐 관심도 없었던 신호등 체계나 노점상, 보도블록 같은 공공 문제까지 관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직장 생활로 운동할 시간이 부족해 '걸어서 출퇴근'에 나서는 이른바 '워킹 워커(Walking Worker)'족(族)이 늘고 있다. 주로 "일 때문에 몸 관리할 여유가 없는데 나이가 드니 건강이 걱정돼 걷기 시작했다"는 40~50대 직장인이 대부분이다.

회원 수가 1만1600여명이 넘는 인터넷 카페 '걷기클럽'에는 매일같이 '걸출'(걸어서 출근) 또는 '걸퇴'(걸어서 퇴근) 일지를 기록하는 이들도 많다. 사무실 책상 밑 귀퉁이에 운동화를 두고 틈만 나면 회사 근처를 도는 직장인도 흔하다.

지난 21일 점심 덕수궁 주변에선 정장을 입은 정원승(39)씨가 귀에 이어폰을 꽂고 팔을 크게 휘저으며 걷고 있었다. 그는 일주일에 3~4일은 회사 구내식당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덕수궁 돌담길 주변을 30분씩 걷는다고 했다. 정씨는 "점심때 나처럼 정장에 운동화를 신고 숨을 크게 내쉬며 걷는 직장인을 자주 본다"고 말했다.

아예 회사 차원에서 '걸어서 출근'을 장려하는 곳도 생겼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지난해 가을부터 의사, 행정직, 용역회사 등 전 직원 1200여명에게 운동화를 나눠주고 '운동화 출근'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의료원 측은 "질병발생률을 감소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인 '걷기 운동'을 효과적이고 손쉽게 실천하기 위해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운동량이 부족해 보이는 임원에게 만보기를 사주고, 평소 2㎞ 내외의 거리나 강남 테헤란로를 걸어 다니며 경영 구상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인 삼성 라이온즈 사장 역시 삼성 SDS 사장 시절 24층 높이 집무실까지 걸어 다닌 '걷기 마니아'다. 삼성 계열사의 한 직원은 "회사 오너(owner)가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한다고 하면 당연히 직원들도 걷기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최치훈(42) 국립중앙의료원 영상의학과 전문의는 "시내 주차비를 아끼려고 투박한 구두를 신고 걸어서 출퇴근하다가 뒤꿈치와 발바닥이 아픈 '족저근막염'에 걸린 적이 있다"며 "발에 잘 맞는 편한 신발을 신고 걷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국내 기능화 시장이 2005년 500억원대에서 지난해 기준 6000억~7000억원대 규모로 커졌다고 추정했다. 프로스펙스 강병조 신발기획팀장은 "걷기 열풍으로 기능성 운동화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직장인들이 신기에는 부담스러운 디자인이 많아 최근 '비즈니스 워킹화' 라인을 따로 출시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