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과 함께 내레이션이… 국내 첫 장애인도 관람 '배리어 프리(barrier-free·무장벽)' 영화

29일 오후 2시 서울 상암동 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 1관. 일반 영화관과 똑같은 공간이었지만 불이 꺼지고 나니 다른 영화와 달리 대사 대신 내레이션이 계속 들렸다. "쓰카하라가 토하자 변기에 검붉은 피가 한가득 고였다" "쓰러진 쓰카하라는 힘없이 발로 문을 찼다" 등. 일본 영화 '술이 깨면 집에 가자'의 장면을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화면도 달랐다. 보통 스크린 오른쪽에 나타나는 대사 자막이 스크린 가운데에 와 있었고, 누가 말하는지 구분할 수 없는 와이드샷(wide shot) 장면에선 자막 옆에 '젊은 여자 목소리' '쓰카하라의 어머니' 식으로 화자(話者)를 표시해 놓았다. 화면 왼쪽에는 '음악 소리가 사라진다' 식으로 음향효과에 대한 설명 자막이 나왔다.

시각·청각 장애인들도 관람할 수 있게 맞춤형으로 제작된 '배리어 프리(barrier-free·무장벽) 영화'다. 일본에서는 스미모토 상사가 연간 4~5편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볼 수 있도록 만들지만, 국내에서 이런 영화가 제작된 것은 처음이다.

이번에 만들어진 '배리어 프리 영화'는 아예 후반 녹음 단계부터 장애인 관람 편의를 고려해 새로 만들었다. 일본 영화 '술이 깨면 집에 가자'는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이 후반 작업을 연출했고, 배우 류현경과 '똥파리' 출연 배우들이 목소리 더빙을, 배우 엄지원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이날 '배리어 프리 버전'으로 상영된 한국 영화 '블라인드'는 안상훈 감독의 감수 아래 녹음·믹싱을 극장 개봉판과 달리 별도로 만들었다.

영화를 본 1급 시각장애인 김모(40)씨는 "그동안 외화(外畵)는 자막을 읽을 수 없어 아예 보지를 못했는데 이번엔 일일이 설명해주니 너무 이해가 잘 되었다"고 했다. 다른 시각장애인 이모(45)씨는 "시각장애인이라고 영화에 관심이 없고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비장애인들의 편견"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