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상] 당뇨로 할머니·아버지 잃은 남자… 異種(사람·동물)간 면역거부 난제 풀고 장기이식 새 길 열었다

인간 당뇨병 완치 가능성을 제시한 서울대 의대 병리학교실 박성회(64) 교수. 그의 양쪽 눈알은 두드러지게 튀어나와 있다. 마치 항상 눈을 부라리는 인상이다. 이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10년간 앓았던 정체불명의 갑상선기능항진증 후유증이다. 1970년대 초반, 20대 청년을 죽도록 괴롭혔던 그 병이 자기(自己) 세포를 자기가 공격하는 '자가(自家) 면역성 질환'이라는 것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할 무렵에나 알게 됐다. 이후 그는 의사가 되고 나서 병리학을 전공하며 면역학 연구에 빠져들었다. 1980년대 초반 미국 하버드의대 연구원으로 생활하면서 면역학에 본격적으로 눈을 떴다. 거기서 시작된 아이디어가 25년간의 연구 끝에 동물과 인간, 이종(異種) 간 장기이식 시 면역 거부반응을 획기적으로 없애는 결실을 맺었다.

박 교수는 이처럼 앞서가는 면역학 연구로 지난 2001년 대한민국 학술원상을 받았다. 1999년에는 '에밀 폰 베링'(Emil Adolf von Behring)상도 받았다. 이 상은 세균에 대한 면역 반응 연구로 1901년 노벨의학상을 받은 독일의 세균학자를 기념해서 대한의사협회와 한독약품이 3년마다 수여한다. 그의 주변 인사들은 박 교수가 대한민국 학술원상을 국내 최고 명예 과학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동안 수차례 다른 의학상을 받을 기회가 있었지만, 매번 후배들에게 양보했다고 전했다.

새로운 당뇨병 치료법을 개척한 박 교수는 '당뇨병 집안'에 속한다. 그의 선친은 당뇨병을 오랜 기간 앓다가 그 후유증으로 10년 전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부인도 당뇨병 치료를 받고 있고, 박 교수도 당뇨병 전(前) 단계 상태에 있다.

그는 "국내에 당뇨병 환자가 350만명 있고, 고령사회를 맞아 그 수는 매년 급증하고 있다"며 "이번 연구 성과가 당뇨병을 획기적으로 관리하는 데 결정적인 실마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향후 기술 특허와 관련된 수익은 서울대 산학연구재단과 기타 의학연구에 쓰일 것이라고 박 교수는 전했다.

그는 의료계에서 유명한 애주가(愛酒家)로 통한다. 매일 저녁 연구실 인근의 종로구 혜화동 일대 대폿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그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박 교수는 "내가 육십 평생 배우고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면역학 연구와 소주 먹는 것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