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LG배 세계기왕전] 四面楚歌

〈제9보〉(124~149)=바둑의 현묘(玄妙)함은 국지적 묘수(妙手)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361로(路)에 불과한 좁은 공간임에도 형세 측량은 아득하고 난해하다. 인류가 거대한 우주 질서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똑 닮았다. 우측 흑진에 침투한 백이 패(覇)도 내지 않고 완생했는데 승부는 여전히 미궁이란다. 적을 살려준 대가로 중앙에 콘크리트 구조물 같은 흑세가 형성됐고, 그 흑세의 잠재력이 보기보다 엄청났기 때문.

124는 중앙을 의식해 최대한 버틴 수. 참고1도 백1 쪽이 더 실속 있을 것 같지만 6까지의 강력한 반격이 기다리고 있다. 평범한 127 호구벌림에도 중앙 흑세 때문에 백은 거동이 불편하다. 128자리를 흑에 내줄 수는 없어서 일단 그 자리로 연결했으나 대신 138까지 좌변서 마구 휘둘린다. 뒤이은 139가 호수. 141에 이르니 흑은 좌변 백진을 깨며 이어간 반면 백은 기어이 중앙이 고립됐다.

참고2도 1로 절단 후 3으로 역습하는 수는 어떨까. 14까지 패(覇)는 가능하지만 흑은 만패불청(萬覇不聽)으로 나올 것이다. 게다가 우하변 쪽 백도 흑이 먼저 손을 대면 패(覇)를 피할 수 없는 상황. 사방이 바빠진 백은 145까지 하변을 응급조치 후 146에 붙여 최대한 버텨 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