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6·25 순교 복자(福者: 성인 前단계)' 대거 나올까

1950년 10월 8일 원산 와우동 형무소. 유엔군의 진군으로 후퇴하던 공산군은 밤 11시에 포로들을 한데 묶어 산 중턱의 방공호로 끌고 갔다. 촛불과 총을 든 북한 군인들은 "시체 위에 엎드려"라고 외쳤고, 이어 총탄이 쏟아졌다. 공산군이 떠난 뒤 살아남은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살려 주세요! 목이 말라요!" 자신도 총에 맞아 사경을 헤매던 한 신부가 외쳤다. "제가 물을 드릴게요…." 천주교 양양본당 사제로 "38선 이북에 가톨릭 신자가 하나도 남지 않을 때까지 성당을 지키겠다"고 하다 공산군에 끌려갔던 이광재(1909~1950) 디모테오 신부의 최후였다.

◇6·25 순교자도 시복 청원키로

한국 천주교가 '근·현대 신앙의 증인'들로 시복(諡福) 추진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안중근(1879~1910) 의사가 이 명단에 포함돼 관심을 끌었지만, '증인' 예비명단은 대부분 6·25전쟁 전후 공산당 박해로 순교했거나 행방불명된 사람들이다. 한국 천주교회가 과거 천주교 전래 초기의 박해 순교자들을 대상으로 시복·시성 청원했다면 최근엔 20세기 순교자까지 대상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주교회의에 따르면 3일 현재 서울대교구(평양교구 포함)를 비롯해 춘천·대전·인천·수원·광주·제주교구와 가르멜수녀회, 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 등 2개 수녀회가 '근·현대 신앙의 증인'들에 대한 시복 조사를 청원했다. 대부분이 6·25 순교자들이다. 이광재 신부도 포함됐다.

춘천교구는 38선 접경지대에서 6·25전쟁 전후에 순교한 신부들(골롬반수도회 2명 포함)을 시복 청원했고, 베네딕도회는 광복 후 공산화된 북한에서 순교한 수도자 38명 시복을 자체 추진 중이다. 가르멜회, 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의 시복 청원 명단에는 처음 한국에서 수녀회를 개척했던 프랑스 등 출신의 사제와 수녀들이 포함됐다. 이들은 6·25전쟁 중인 1950년 말 겨울에 공산군이 성직자와 수도자들을 납치해 평양에서 중강진까지 압송했던 '죽음의 행진'에서 순교했다.

◇시복 청원 절차는

현재 한국 천주교회의 청원에 의해 시성된 성인(聖人)은 103명. 또 지난 2009년 6월 조선 말 박해 순교자 등 125명에 대한 시복을 교황청에 청원해 놓은 상태다. 지역 내 전승, 각 성당의 기록 등을 조사해 예비 후보군을 발굴하는 작업은 교구별로 구성된 시복시성준비위원회 등의 조직이 맡는다. 주교회의 관계자는 "지역 교구별로 시복 청원이 이뤄지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이미 1997년 16개 교구가 시복 청원 대상자 선정과 약전 작업을 주교회의에 위임했고 2001년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가 구성됐다"며 "한 지역 교구의 복자가 아닌 전체 한국 교회의 복자로 추대키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교회의 특별위원회가 심사를 거쳐 명단과 예비 심사 내용을 교황청에 제출하면 교황청 시성성에서 교회법·역사·신학적 검토와 심의를 하고, 관련 추기경·주교 회의를 거쳐 교황이 시복하게 된다. 복자가 되면 해당 교구나 지역에서 공식적인 신자들의 공경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추가로 기적 사례가 확인되는 등 절차를 거쳐 성인이 되면 세계 어디서나 공식적 공경을 받고 이름을 세례명에 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