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내서 마련했는데 또 올려… 전세금대출 2년새 5배 증가

지난해 초 경기 고양의 전세 아파트(99㎡·보증금 1억3000만원)에 신혼집을 마련한 김모(36)씨는 요즘 수원 지역에 집을 알아보러 다닌다. 직장도 생활권도 변하지 않았지만, 집주인이 전세금을 2억원으로 올려 달라고 하는 바람에, 이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미 전세 대출 3500만원을 안고 있는데, 수원 지역도 아파트 전세금이 많이 올라 돈을 더 빌려야 할 형편이다. 김씨는 "수원으로 옮기더라도 3000만원 정도를 더 빌려야 돼 월 이자 부담이 15만원 이상 늘어난다"면서 "평생 '대출 인생'으로 살 것 같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전세금 폭등으로 최근 2년 새 전세 자금 대출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김씨처럼 대출 이자 부담이 크게 늘어나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른바 '전세 푸어(poor)족'이 늘어나고 있다.

3일 국민·신한·우리·하나·기업 등 5대 시중은행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전세 자금 대출 잔액이 4조3142억원에 달했다. 한 달 사이에 2501억원(증가율 6%) 늘어난 것이다. 2년 전인 2009년 말(8765억원)과 비교하면 5배 급증했다.

대출 금액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금리도 올라 서민들의 고통은 더하다. 한 시중은행의 10월 말 현재 신규 전세 자금 대출 금리는 연 4.59~ 5.99%로, 올해 초(4.29~5.69%)보다 0.3%포인트 정도 올랐다. 은행에서 추가 대출을 받지 못하는 경우 금리가 10%를 훌쩍 넘는 제2금융권 대출을 이용할 수밖에 없어 실제로 서민들이 체감하는 이자 부담은 더 크다. 전세 자금 대출 연체율을 포함한 국내 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2009년 말 0.48%에서 올 9월 말 0.71%로 뛰었다.

증권가에선 내년에 전세금 급등으로 여유 자금이 고갈된 '전세 푸어족'이 주가 상승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통상 짝수 해는 전세 재계약이 많은 시기이기 때문에 전세금 상승 여파가 증시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중혁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전세금을 올려주고 나면 투자 여력이 고갈돼 증시로 흘러들어올 자금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전세금을 올려주느라 펀드나 주식을 팔면서 시장에 충격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