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장순씨 "마지막 보람된 일" 서울대에 20억 기부

"인생은 무상하다는 의식을 갖고 작품을 써왔지만 마지막 가는 길에는 보람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프랑스 실존주의 문학의 영향을 받은 문제작(問題作)들을 쓰며 70년대 여성들의 우상으로까지 불렸던 소설가 손장순(76)씨가 서울대에 20억원을 기부했다. 서울대는 7일 "손씨가 기부한 20억원으로 '손장순 문학연구기금'을 설립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서울 서초구의 자택에서 만난 손씨는 여전히 책상 위에 200자 원고지 뭉치를 쌓아두고 새 작품 구상에 몰두하고 있었다. 손씨는 "기부한 20억원은 평생 고독하게 살아온 대가"라고 말했다. 그는 30세에 첫 남편과 이혼했고, 42세에 재혼하기까지 혼자 살았다. 그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준 대표작 '한국인(1969)'과 '세화의 성(1976)'이 이때 쓰였다.

1958년 '입상' '전신'으로 등단한 손씨는 2007년 '폭죽'까지 소설집 20여권을 발간했다. 한국여류문학상(1967), 펜문학상(1996), 유주현문학상(2008) 등도 수상했다. 그는 "돈이 생긴 이후에도 가난하던 시절의 의욕을 잃게 될까봐 일부러 물욕을 부리지 않고 살았다"고 했다.

손씨가 기부를 결심하게 된 것은 2009년 11월 난소암 진단을 받은 직후다. 그는 "재산을 환원해야겠다는 생각은 원래 있었지만 이때부터 마음이 조급해졌다"고 했다. 서두른다고 했지만 지난해 4월 암 수술, 7월 탈장 수술, 올해 4월 대동맥 판막 협착증 수술을 받으며 기부 날짜가 미뤄졌다. 그는 "지난 8월부터 2개월에 걸쳐 현금 20억원 입금을 하고 나니 일을 마친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불문학과 54학번인 그는 모교인 서울대에 설립한 연구기금으로 매년 서울대에서 한국 문학을 공부하는 영·독·불어권 외국인 3명을 지원해달라고 학교 측에 요청했다. 그의 집에는 새 물건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거실에는 40년 전에 샀다는 금성전자 전기스토브가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