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신체 결점을 투지로 극복한 챔프

20세기 복싱사(史)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장식한 복서 조 프레이저(67·미국)가 8일 필라델피아의 자택에서 간암으로 사망했다. 그와 무하마드 알리(69)는 '세기의 라이벌'이었다.

프레이저는 1944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남부 보퍼트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몸은 복싱 선수로선 결점이 많았다.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팔이 왼팔보다 짧고, 왼쪽 눈은 백내장으로 거의 보이지 않았다. 어린 시절 왼팔을 다쳐 팔을 쭉 뻗지도 못했다.

그런 프레이저를 최고 복서로 만든 것은 열정과 투지였다. 그는 10대 시절 필라델피아에서 도살장 아르바이트를 하며 복서 꿈을 키웠다. 헤비급 선수로는 크지 않은 덩치(182㎝)와 짧은 팔을 저돌적 접근전으로 극복했다. 잘 펴지지 않는 왼쪽 팔로는 전매특허인 레프트 훅을 완성했다.

프레이저의 복싱 인생은 알리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그는 1971년부터 세 차례 알리와 대결을 펼쳤다. 뉴욕 메디슨스퀘어가든에서 처음 맞붙어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으로 프레이저가 이겼다. 알리의 프로 첫 패배였다. 그러나 3년 뒤 두 번째 대결에선 프레이저가 판정패했다.

1975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마지막 대결은 복싱 사상 최고 명승부로 꼽힌다. 둘은 14라운드까지 가는 난타전을 펼쳤다. 프레이저는 눈이 부어올라 앞이 보이지 않는 지경이 됐고, 결국 트레이너가 수건을 던져 경기를 포기했다. 그는 트레이너를 두고두고 원망했다고 한다.

프레이저는 1976년 조지 포먼에게 패하고 은퇴했다. 프로 통산 32승(27KO)1무4패. 그를 이긴 선수는 알리와 포먼뿐이었다. 은퇴 후 프레이저는 필라델피아에서 체육관을 열고 말년까지 후배를 육성했다.

프레이저와 알리는 은퇴 후에도 견원지간처럼 으르렁거리다가, 첫 대결 30년 만인 2001년 극적으로 화해했다. 권투선수로 자라난 두 사람의 딸(재키 프레이저, 라일라 알리)이 링에서 대결을 편 것도 화제였다. 프레이저 사망 소식을 접한 알리는 "세상은 위대한 챔피언을 잃었다"며 "나는 항상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를 기억할 것"이라고 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