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월 詩에 곡 붙여 증손녀가 노래하다

"증조할아버지의 시 '못잊어'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라고요. 제가 힘들 때 이 시가 위로가 된 것처럼, 할아버지 시를 노래로 부르며 어려운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어요."

시인 김소월의 증손녀 김상은(35)씨가 9일 소월의 시에 곡을 붙여 노래로 불렀다. 김씨는 소월의 맏딸의 맏딸의 맏딸이다. 공연장은 차병원그룹 병원의 하나인 차움이었다. 김씨의 남편이 차병원 의사이기 때문이다. 차움 개원 1주년 기념행사의 하나이기도 했다. 차움 측은 "외국인이 많이 오는데 한국의 정서와 문화를 알리는 것도 뜻깊을 것 같았다"고 했다.

김씨는 단국대 성악과 석사과정을 마친 뒤 이탈리아에서 수학하고 현재 CCM(기독교음악)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날 소월의 시 가운데 '못잊어' '진달래꽃' '부모'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에 곡을 붙여 노래로 불렀다. 작곡가 이권희씨가 곡을 만들어주었다. 그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쉽게 작곡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제 삶이 특별한 건 없어요. 소월의 증손녀라는 걸 알곤 있었지만 먼저 말한 적도 없고요. 그런데 지난달 소월아트홀에서 제안한 음악회에 나서 보니 제가 그분 자손인 것만으로도 많은 분이 사랑해주시네요. 그래서 증조할아버지 이름으로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증손녀로 살아보기로 했죠."

그는 유학 후 귀국해 결혼하고 임신하면서 무대에 서기 어려웠다고 한다. 대신 암환자 병원과 소년원에 다니며 기독교 노래를 부르는 봉사에 나섰다. "그분들이 눈물 흘리며 손뼉 치는 모습을 보고 CCM 가수가 되기로 했어요. 성악을 전공한 덕에 이제 할아버지 시에 곡을 붙여 노래 부를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고요."

"제게 증조할아버지의 시는 '위로'이자 '희망'입니다. 작년에 5개월 된 아기를 유산했을 때도 '못잊어'와 '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를 통해 위로받았어요. 시가 나와 함께 울어주는 것 같았고, 괜찮아질 거라는 희망도 얻을 수 있었어요." 그는 "다음 달 24일이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라며 "그날에 맞춰 '소월의 노래'라는 앨범을 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개여울' '눈물이 주르르 흘러납니다' '왕십리' 같은 곡이 추가될 예정이다. 또 내년에는 소월 탄생 110년을 기념해 정식 음악회도 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