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구둣방 천사아저씨

지난 9일 오후 전북 군산시 소룡동 1통 전모(72) 할머니 집 앞. 비좁은 골목에 동 주민센터 공무원 10여명이 줄을 짓더니 손에서 손으로 연탄을 건넸다. 20여분 사이 연탄 300장이 혼자 사는 전 할머니의 낡은 함석집 모퉁이에 쌓였다. 한 직원이 "구둣방을 하시는 박성배씨가 보내주신 것"이라 말하자 전 할머니는 "그분도 어렵게 살 텐데, 어찌 이런 생각을…" 하며 고마워했다.

주민센터 봉사단이 이날 소룡동 1-2통 독거 노인 7가구에 전한 연탄은 2000장. 모두 이 마을 동아아파트 입구 2평짜리 구둣방 주인 박성배(56· 사진)씨가 보낸 것이었다. 박씨는 연탄을 보내기 위해 매일 5000원씩 1년 가까이 저금해온 통장에서 100만원을 인출했다. 그는 말까지 어눌한 소아마비 1급 장애인으로 이 돈을 모으려고 매일 점심값을 아꼈다. 벌써 3년째 도시락을 싸 출근하고 있다.

그의 도시락은 늘 식은 무국이나 시래기국에 김치 반찬. 그는 "찬밥에 목이 멜 때도 있지만 이러지 않으면 돈을 모을 길이 없다"고 했다. 그는 점심값을 아껴 작년 11월에도 125만원을 인출해 김장 배추 500포기를 동네 어려운 이웃들에게 보냈다.

그가 구두를 닦고 수선해 버는 돈은 하루 7만~8만원. 일요일은 쉬고 비 오는 날, 병원 가는 날도 있어 한 달 20일 벌이가 150만원쯤이다. 이 수입으론 한 달 30만원쯤 드는 약값도 빠듯해 이웃 돕는 일에 쓰려 점심값을 아끼고 있다.

박씨는 소룡동 옆 산북동의 낡은 13평 월세 아파트에서 휠체어에 의지하는 아내(60)와 둘이 살고 있다. 아내 거동이 힘들어 빨래는 박씨 몫이고 밥도 직접 지을 때가 많다.

"지금까지 이웃 도움을 받아 아내와 살아왔어요. 작은 돈이지만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쁩니까."

박씨는 14년째 소룡동에서 구둣방을 해 오면서 최근 5년 사이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다. 심장 수술과 뇌 수술이었다. 주민들이 구둣방을 찾아주었기에 두 차례 수술비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했다. 부부가 장애인이어서 정부로부터 생활비와 의료비를 보조받을 수 있지만 "아직 일할 수 있다"며 신청하지 않고 있다.

전남 진도 출신인 그는 초등학교를 마친 뒤 용접 기술을 익혀 전국 여러 도시에서 철공소 일을 해왔다. 16년 전 강원도 태백에서 아내를 만나 아내 고향인 군산으로 터전을 옮겼다. 발만 보고도 신발 치수를 아는 구두 박사가 됐고, 망가진 가방·우산·주방기구까지 수리하지 못하는 게 없어 '우리 동네 맥가이버'로 불린다. 5년 전 동네 노인을 보살피기 시작하면서 '돕는 즐거움'을 알았다고 한다.

박씨는 매일 알약 20알을 먹으며 몸을 지탱하고 있다. 그는 "다시 쓰러지면 그때는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할지 모른다"며 "그때 부끄럽지 않게 미리 저축하고 있는 것"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