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드라이브… 만지면 화상 입는 드라이아이스, 그런 드라이버

덴마크 감독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드라이브'에서 스피드 액션을 기대하면 오산이다. 드라이브는 제목이 주는 '뜨거운' 느낌과는 딴판으로 가슴을 찌르는 듯 '서늘한' 영화다. 주요 인물들의 감정 표현은 절제돼 있고, 잔혹한 액션신에서조차도 냉정함이 느껴진다.

드라이브의 내러티브는 단순하다 못해 공허하다. 어디서 왔는지, 과거에 뭘 했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드라이버'(라이언 고슬링)는 낮에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한다. 영화에선 그의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다. 뛰어난 운전실력을 가진 그는 영화 촬영현장에서 스턴트맨을 맡거나 갱단의 도주를 돕는 일을 한다.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던 그는 옆집에 사는 유부녀 아이린(캐리 멀리건)을 사랑하게 되면서 아이린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범죄와 폭력에 연루된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다'는 식의 단선적인 스토리는 드라이버의 양면적인 캐릭터와 이를 완벽하게 소화해낸 캐나다 출신 배우 라이언 고슬링(31) 덕분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갈이 수놓아진 점퍼를 걸치고서 입에 이쑤시개를 습관처럼 물고 다니는 그는 서부극의 외로운 카우보이를 떠올리게 한다. 무표정하게 사람의 머리통을 부숴버리면서도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는 아이처럼 수줍은 미소만 짓는 남자. 고슬링은 대사를 거의 하지 않고도 순진한 소년과 잔혹한 짐승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드라이브의 미덕은 대사로 영화를 설명하지 않는 데 있다. 이 영화에서 음악과 로스앤젤레스(LA)는 '제2의 주연'이라고 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신스팝(전자음을 사용한 복고풍 음악)과 일렉트로닉을 적절히 섞은 음악은 영화의 온도를 높였다, 낮췄다 적당히 조절하는 역할을 맡는다. 밤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LA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와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섞어놓은 것처럼 삭막하고도 몽환적이다. 레픈 감독이 라이언 고슬링과 함께 차를 타고서 밤에 LA를 돌아다니며 직접 찾은 장소들이라고 한다.

올 4월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 17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이것이 포인트]

#장면
'드라이버'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이린에게 키스한 뒤 옆에 있던 남자를 밟아서 죽이자 아이린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가버린다.(사랑과 폭력의 딜레마에 놓인 드라이버)

#대사
"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야. 당신 곁에 있었다는 건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었어."(드라이버가 마지막 복수를 위해 떠나며 아이린에게)

#해외평
"올해 최고의 영화"(롤링스톤)

#이런 분들 보세요
전형적인 할리우드 스피드 액션에 싫증 난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