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후 창업 나선 베이비부머… 그들을 노리는 은행

중견기업 부장직을 끝으로 지난 3월 퇴직한 박상렬(52)씨는 8개월째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애초 지하철역 주변 커피전문점을 알아보았지만 창업 준비자금이 너무 많이 들어 포기했고, 요즘엔 주로 프랜차이즈 음식점 설명회에 다닌다. 박씨는 "퇴직금을 합쳐 이리저리 끌어모아도 2억원 남짓인데 이걸로 뭘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2006년부터 감소세를 보였던 자영업자 수가 최근 다시 늘어나고 있다. 퇴직 후 생계형 창업자 수의 증가폭이 특히 더 크다. 돈 굴릴 데 없는 은행들은 자영업자 대출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은 번 돈으로 은행 빚 갚기도 숨차다.

◇자영업자 수 증가세로 반전

통계청에 따르면 10월 우리나라 전체 자영업자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0만7000명(증가율 1.9%) 늘었다. 자영업자 수는 2006년 5월 이후 꾸준히 감소해 왔지만 지난 8월 5만3000명 늘어난 뒤 3개월 동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각광 받고 있는 정보통신 애플리케이션 업종에 20대 창업이 조금 늘어난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50대 이상 창업자들이 증가폭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 정부의 분석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의 퇴직이 시작된 것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50~60대 창업자들은 대개 음식숙박업에 집중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황수경 KDI 연구위원은 "OECD 기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중은 이미 상당히 높은 편인데, 자영업자의 추가 증가세는 경계해야 할 흐름"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취업자 중 자영업자를 포함한 비임금근로자의 비중은 28.8%로 OECD 31개 회원국 중 그리스(35.2%)에 이어 두 번째다. 미국(8.7%), 독일(11.1%) 등 선진국은 10% 안팎에 불과하다.

◇은행, 자영업자 대출에 전력

"가계대출은 정부에서 막지, 중소기업 대출은 위험하다지, 남은 건 자영업자 대출밖에 없어요."

한 시중은행 지점장의 솔직한 고백이다. 올해 하반기 들어 정부가 가계대출을 막자, 돈 굴릴 데가 줄어든 은행들이 자영업자를 주 타깃으로 삼고 있다. 하반기 이후 일선 은행 지점에서 가계대출이 과다하게 일어나면 본점으로부터 경고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은행은 내부신용등급이 B 이하인 중소기업에 대출해 주는 경우, 영업점의 실적을 평가하는 성과관리지표(KPI)에 점수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신용등급 BBB 이상인 기업에만 돈을 빌려줘야 해, 중소기업 대출로는 지점들이 실적을 올리기 어렵다.

이런 배경 때문에 은행들은 개인사업자(자영업자) 대출에 목을 매고 있다. 국민·신한·우리·하나 등 4대 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10월 말 현재 77조3839억원이다. 지난해 말(71조1851억원)보다 8.7% 늘어났다. 같은 기간 동안 이 은행들의 총 대출 잔액 증가율(6.7%)을 뛰어넘는 수치다.

◇자영업자 100원 벌어 21원 빚 갚아

현재 우리나라 자영업자들의 재무구조는 매우 안 좋은 상황이다. 한국은행 등이 최근 발표한 '2011년 가계금융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자영업자의 경상소득은 5048만원, 원리금상환액은 1082만원이었다. 100원을 벌면 이 중 21원을 빚 갚는 데 쓰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경우 100원 벌어 16원을 빚 갚는 데 쓴 것에 비교하면 사정이 크게 악화됐다. 이는 자영업자들의 부채가 지난해 7132만원에서 올해 8455만원으로 1년 사이 18.6%나 급증했기 때문이다.

증가세로 돌아선 자영업자들이 한정된 시장에서 '제살 깎아먹기' 경쟁을 할 경우 자영업자들의 형편이 더 나빠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김복순 한국노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베이비붐 세대인 50대 중 은퇴 후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람 대부분이 경쟁이 심한 생계형 서비스산업에 집중되어 있어, 줄도산 우려가 있다"며 "자영업자에 대한 체계적인 구조조정을 다시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