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환은행(004940)의 대주주인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지분율 51%)에 대한 한도초과 지분 매각명령을 앞두고 금융위원회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달 대법원의 론스타에 대한 유죄판결 이후 금융위원회는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 꼬여 있는 매듭을 빠른 속도로 풀어갔다. 론스타가 항소를 포기하자 금융위는 ‘대주주요건 충족명령 사전 통지(10월17일)→대주주적격성 충족명령(10월25일)→주식처분 명령에 대한 사전 통지(10월31일)’ 등의 절차를 밟았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가 마지막 절차인 론스타의 한도초과 지분 41%에 대한 매각명령도 빠른 시일내 내릴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숙고(熟考)를 거듭하고 있다.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향후 후폭풍이 거셀 수 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론스타에 불리한 결정을 내릴 경우 국제 소송에 휘말릴 수 있고 반대로 론스타에 유리한 결과가 나온다면 정치권과 외환은행 노조의 반발 등 부정적 여론이 들끓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 입장에서 가장 크게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하나금융지주(086790)와 론스타의 매매계약이다. 매각명령 방법 자체에 대해 고민인 상황에서 현재의 주가가 하나금융과 론스타의 매매가격보다 현저하게 떨어져 있어 ‘먹튀 논란’에 대한 부담까지 금융위원회가 감안하지 않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최근 정치권 등이 론스타가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지 못하게 하는 징벌적 매각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면서 문제는 더 꼬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10%를 넘는 초과 지분은 모두 불특정 다수에게 강제로 장내에 매각하는 징벌적 매각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론스타가 산업자본 인지 여부를 최종 판단한 뒤 매각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밝혀 부담은 더욱 커졌다.
◆ 고민① 은행법 대로? 매각방법 고민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론스타의 한도초과 지분 명령과 관련, ‘법적 테두리 안’에서 ‘국익’을 위한 결정을 내리겠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국익을 위한 방법이 과연 무엇일까를 놓고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은행법은 '한도 초과 보유 주주 등이 6개월 이내에 은행 주식을 처분할 것을 명할 수 있다'고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매각 조건을 정해서 명령할 수 있다는 조항은 두고 있지 않다. 은행법에 따라 금융위는 조건없이 대주주 자격을 상실한 론스타에 최대 6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해 초과보유 지분(41.02%) 매각을 명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식 처분을 명할 수 있다'는 똑같은 방식의 포괄적 권한만 부여하고 있는 옛 증권거래법을 적용해 징벌적 매각명령을 내린 전례가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지난 2004년 KCC가 5%룰(5% 이상 지분 보유 시 신고 의무)을 어기고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취득한 건과 2008년 디엠파트너스가 투자 목적을 허위로 신고한 뒤 한국석유공업 지분을 취득한 건이다. 당시 금융위원회 권한을 위임받은 증권선물위원회는 이들에게 일정 기한 내에 시간외매매ㆍ통정매매 등을 빼고 장내 공개매각 방식으로 처분하도록 강제매각 명령을 내렸다.
금융위원회가 장내 매각 등 지분매각 방법을 정하지 않고 매각 명령만을 내리게 되면 론스타는 이미 매매계약을 맺은 하나금융에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얹어 주식을 팔 수 있다. 이럴 경우 금융위는 론스타의 먹튀를 방조했다는 책임이 불거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내년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어서 일부 정치인들과 여론의 뭇매를 감수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저축은행 사태로 금융당국 수장과 실무자들이 줄줄이 청문회에 불려나왔고 일부는 법정구속된 상태다. 이런 광경을 목격한 금융위원들이 앞뒤를 재고 망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금융위 한 관계자는 “최근 정치권과 학계 등이 론스타 주식명령 처리에 여러가지 입장을 밝히면서 고민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며 “민감한 사안이라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대처 방안을 금융위 내에서 검토하느라 시간도 길어지고 효율도 안 나고 있다”고 말했다.
◆ 고민② 40% 이상 하락한 외환銀 주가 ‘먹튀논란 부담’
론스타가 하나금융과 이미 매매계약을 맺었다는 점은 금융위원회를 더욱 어렵게 하는 요소다. 론스타가 매수자를 찾지 못한 상태라면 매각방식을 정하지 않은 주식처분명령은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6개월 이내라는 시간이 론스타의 협상력을 떨어뜨려 먹튀논란을 최소화하면서 론스타를 국내에서 내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론스타는 주당 1만3390원에 3억만주가 넘는 주식(51.02%)을 하나금융에 이미 넘기기로 한 상황이다. 11일 종가 기준 외환은행 주가는 7770원이다. 매매가격을 기준으로 42%나 내려갔다. 11월말이 론스타와 하나금융의 협상마감이긴 하지만 어느 한 쪽에서 협상을 파기하지 않을 경우 이 협상은 유예된다.
◆ 고민③ 강제매각 명령 내린다 해도 법적 실효성 의구심
금융위원회가 론스타에 6개월 이내의 강제 매각 명령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법적인 실효성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론스타가 매각시한을 지키지 못하면 하루에 약 5억~10억원 수준의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지난 7월 하나금융과의 계약금액이 4조4059억원인 점을 고려할 때 1년동안 2000억~3000억원 안팎의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론스타 입장에서는 최대한 외환은행 주가가 오를때까지 시간을 끌어 매각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가져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하나금융이 계약금액을 주당 1000원만 깎아도 3300억원을 덜 받게 되는 상황이다. 다시말해 매각시한을 넘겨서라도 매각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는 판단이 선다면 과징금은 론스타에게 크게 부담이 안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론스타가 이행강제금을 물더라도 하나금융과의 가격협상 테이블에서 최대한 시간을 가지면서 가격협상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고민④ 그렇다고 장내매각? ‘외환銀 주주에 피소 우려’
금융위원들은 최근 외환은행 노동조합으로부터 내용증명서 형식의 서신을 받았다. 내용은 외환은행 매각을 반대한다는 것으로 론스타가 외환은행 주식을 팔 때 경영권 프리미엄을 얻지 못하도록 '징벌적 강제 매각' 명령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금융위원들은 집으로 배달돼 온 내용증명의 서신을 받고 집주소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위협을 느꼈고 불쾌해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계도 론스타가 웃돈을 받고 외환은행 지분을 넘기는 게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제기하고 나섰다. 연세대 홍복기·심영 교수는 "론스타에게 경영권 웃돈을 배제하고, 초과 보유분은 불특정 다수에게 장내 매각해야한다"는 법률검토 의견을 금융위원회에 제출했다. 론스타가 경영권 웃돈을 받고 외환은행 지분을 팔도록 하는 것은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을 박탈하도록 한 법원 판결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외환은행 노조나 정치권이 주장하는대로 장내 매각명령을 내린다면 어떻게 될까? 이 역시 문제가 쉽지 않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한도초과 지분(41.02%)을 시장에 팔아치울 경우를 가정해 보자. 물량이 2억6000만주 이상에 달한다. 11일 기준 외환은행 거래량은 약 90만주였다. 이대로라면 288일 동안 쉬지않고 외환은행 주식을 팔아치워야 한다는 얘기다. 6개월 내에 이 주식을 장내에서 모두 팔아 치우는 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더불어 이 엄청난 물량을 내놓는다면 외환은행 주가는 연일 하한가를 기록할 수 밖에 없다. 이로인해 주가가 급락한다면 외환은행 다른 주주들에게 소송을 당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금융위원회는 결국 현행법에 위배되지 않으면서도 실질적인 징벌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매각 조건’을 모색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론스타의 지분을 신탁 방식으로 이전한 뒤 신탁관리인을 통해 매각토록 하는 방법도 제기되고 있지만, 이 역시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는 것이 금융위원회의 생각이다.
한 금융위원은 “가능한 한 여러가지 방법을 모두 검토하고 있다”며 “하나금융과의 계약만 없었어도 고민 절반 이상을 줄일 수 있었을텐데 외환은행 주가가 크게 하락하면서 먹튀논란의 부담이 커져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