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슬플수록, 포장은 화려하다

화려한 복도에서 디즈니 만화 속 왕자와 공주가 춤을 춘다. 빨강·분홍·노랑 장미로 만든 하트 모양 부케가 화면 아래쪽 한가운데를 차지했다. 화면 오른쪽에서는 날개 달린 사랑의 신(神) 큐피드가 통통한 얼굴에 장난기를 가득 담고 오른손으로 아래를 가리키고 있다. '결혼'을 연상시키는 전형적인 이미지로 점철된 이 그림은 화사하고 달콤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작위적인 느낌을 준다. 제목은 '홀마크 프로젝트-결혼'.

17~30일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개인전 '홀마크 프로젝트'를 여는 정소연(44)은 미국의 대표적인 카드 회사 홀마크(Hallmark)의 각종 카드 속 이미지를 차용한 그림을 그린다. "장미, 부케, 드레스를 입은 공주 등의 아름다운 이미지로 장식된 '결혼', 케이크와 풍선, 폭죽 등의 신나는 이미지를 담은 '생일'…. 상황별 카드, 참 여러 가지지요. 사람들은 예쁜 카드를 주고받으며 황홀한 꿈을 꾸지만 실제 결혼 생활과 생일이 어디 낭만적이고, 신나고, 아름답기만 하던가요? 전형적인 결혼·가족·생일 파티와 현실의 괴리감으로 우리는 때로 얼마나 괴로운가요? 꿈과 현실, 주입된 이미지와 실재(實在)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 이 작업을 시작했어요."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 공과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아트를 전공한 정소연은 '아름답게 포장된 것들의 이면'에 집중해 온 작가다. 2002년에는 바비 인형 상자를 높이 2m 크기로 확대하고 상자 안의 인형 사진에 자신의 약혼복과 웨딩 드레스, 신혼 한복 등을 입힌 '인형의 집' 시리즈를 내놨다.

아들 하나를 둔 싱글맘인 그는 "이혼 직후 바비 인형 고르듯 상품화된 결혼, 결혼식이나 약혼식 당일에만 유효한 화려한 드레스의 허상을 보여주고 싶어 시도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인조 보석으로 만든 먹음직스러우나 실제로 먹을 수는 없는 디저트, 핑크색 털실로 짠 겉보기엔 예쁘지만 쓸 수는 없는 욕조 같은 것이 그녀의 작품이다. 그는 "그럴듯하게 포장된 슬픈 이야기인 내 작품은 유복하게 자라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씁쓸한 이야기로 가득 찬 나 자신을 투영한다"고 했다. (02) 730-7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