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스트로, 서울대를 지휘하다… 한 푼도 안 받고

"'바아아앙' 늘어지게 빼지 말고 '바앙 바앙 바앙 바앙' 강세를 둬서 통통 튀게 연주하세요. 굿! 정말 잘했어요!"

늦가을 바람이 유난히 쌀쌀한 15일 오후, 서울대 문화관 대강당(콘서트홀)에선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이 연주되고 있었다. 악기를 들고 무대를 채운 건 서울대 음대 기악과 2~4학년생들로 이뤄진 서울대 음대 심포니 오케스트라, 이들을 지휘하는 건 피아니스트 출신 명(名)지휘자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Ashkenazy·74)였다.

쇼팽·퀸 엘리자베스·차이콥스키 등 3대 피아노 콩쿠르 석권,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체코 필하모닉·NHK 교향악단 음악감독, 수석 지휘자를 역임하고 현재 시드니 심포니 상임지휘자인 아슈케나지가 이날 서울대 음대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1일 지휘자'로 깜짝 부임한 것. 1시간30분 동안 학생들을 성심껏 지도했지만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아슈케나지 같은 거장이 학교로 직접 찾아와 학생들과 튜티 콘서트를 연 것은 전무후무한 일"(김영욱 서울대 음대학장)이다.

한·호주 수교 50주년을 맞아 16~17일 예술의전당에서 시드니 심포니와 함께 브람스 '교향곡 1번'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을 연주하기 위해 방한한 아슈케나지는 입국 날짜(14일)와 연주회 사이의 하루 '빈틈'을 의미 있게 보내려 이 자리를 마련했다.

그는 평소에도 여름이면 유럽 각국의 젊은이 130여명으로 구성된 유럽연합 청소년 오케스트라(EUYO)를 지휘한다.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언어는 음악" "구소련에서 태어나 사상과 여행의 자유 없이 연주했던 내 모습을 떠올리면 당시 내 또래의 아이들에게 음악의 깊은 맛을 하나라도 더 알게 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덕택에 정기 연주회(12월 19일)를 한 달 앞둔 서울대생들은 오전엔 시드니 심포니의 수석 연주자 13명으로부터 현악·목관·금관 등 연주 지도를 받고, 오후엔 거장의 직접 지도까지 받는 영광을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