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복잡한 혜택을 단순하게 '애플형 금융상품'이 뜬다

"사람들은 디자인이 겉모습만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면 디자인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느냐는 문제입니다."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Jobs)가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긴 이 명언이 최근 금융가에 소리 소문 없이 퍼져 나가고 있다. 날씬하고 단순한 디자인으로 몇 가지 버튼만 눌러도 모든 기능이 작동되는 아이팟(iPod)나 아이폰(iPhone)처럼, '거추장스러운 액세서리'를 없앤 금융상품들이 뜨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애플형 금융상품' 시대다. 금융상품 속 복잡한 내용을 간단하게 만들고 고객들의 불만을 개선하고, 요청 사항을 최대한 반영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자신의 필요에 맞게 상품을 고를 수 있고, 이후에 발생할 번거로움과 부담이 없어 편리하다.

김연성 인하대 경영학부 교수는 "스티브 잡스가 남긴 핵심 시사점은 '의사결정의 주체는 고객 이라는 것' 이라며 "점점 간편하고 단순한 상품을 원하는 고객의 취향을 금융상품에 반영한 것이 애플형 상품"이라고 말했다. 카드사, 은행, 심지어 보험사들도 출시하고 있는 애플형 상품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카드는 '숫자'로만 고른다

삼성카드는 최근 카드명에 고유명사 등의 이름을 붙이지 않고 숫자로만 혜택을 알아볼 수 있는 브랜드를 선보였다. 카드 이름인 숫자가 곧 카드가 가진 혜택을 보여주는 애플형 상품이다. 카드 디자인에는 화려한 이미지나 문구 없이 큼직한 숫자와 혜택만 단순명료하게 나타나 있다. 삼성카드 관계자는 "1~7까지 각 카드에 숫자를 매겨 순차적으로 출시할 예정"이라며 "소비자는 정확히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 고를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출시된 삼성카드 '2'는 20~30대를 위한 카드다. 대중교통과 이동통신요금을 10% 할인해주고, 커피전문점과 쇼핑몰 등에서 최대 3% 포인트를 적립해준다. 삼성카드 '3'은 포인트만 쓰고 싶은 고객이 대상이다. 업종별로 최대 5%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핵심 기능만 담았다.

현대카드에서 최근 출시한 제로(zero)카드는 포인트 적립 기능을 일절 없앴다. 대신 무조건 0.7%씩 할인해주는 기능을 붙였다. 특정 가맹점에선 1.2%까지 할인해 준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고객이 그동안 할인을 받기 위해 전달에 카드를 얼마 써야 하는지, 할인이 몇 번 가능한지 알아봐야 하는 복잡함을 없앴다"고 했다. 할인 횟수와 할인한도, 전달 이용실적에 상관없이 할인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예금계좌, 집에서 만든다

은행권도 애플을 표방한 상품을 출시해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지난 9월 산업은행이 출시한 '다이렉트 뱅킹'이 대표적이다. 고객이 직접 은행을 방문하지 않아도 직원이 집이나 회사로 찾아가 실명을 확인하면 인터넷으로 단 5~10분 만에 계좌 개설이 가능하다. 고객은 집에서 편리하게 계좌를 만들고, 은행은 지점 운영비를 대폭 줄여 비용을 절감, 고객계좌에 높은 수시입출금 금리(3.5%)를 적용하는 일종의 윈윈(win-win) 상품이다. 산은 관계자는 "하루 평균 250명이 계좌 개설을 신청하는데, 당초 예상한 인원보다 2.5배가 많다"고 말했다. SC제일은행도 조만간 이와 비슷한 상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씨티은행에서 최근 출시한 '수수료 제로 통장'도 큰 인기다. 다른 은행에서 돈을 뽑을 때도, 오지에서 계좌이체할 때도, 해외 ATM을 이용할 때도 1년 365일 수수료가 공짜다.

◇암(癌)에 또 걸려도 보장받는다

현대해상이 최근 출시한 '멀티플 암보험'은 암보험의 기존 상식을 깬 상품이다. 예전에는 암을 한차례 진단받아 보험금을 받으면 보험의 효력이 사라져 또다시 가입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러나 이 상품은 업계 최초로 암으로 진단받아 보험금을 지급한 뒤 다른 부위에 두 번째 암이 발생해도 보험금을 준다. 남상훈 현대해상 팀장은 "암보험에 가입했어도 암이 재발하면 보험금을 받을 수 없다는 소비자들의 불안감에 귀 기울였다"며 "경우에 따라 암에 4번 걸릴 경우 4차례에 걸쳐 최대 1억원의 진단금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