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모던 조선'] [79] "남편 축첩하니 아내도 간통… 근래에 진긔한 사실"

1927년 11월 11일, 결혼식이 열린 개성 중앙회관 앞에서 송도(松都)고등보통학교 학생 100여명과 미리흠(美理欽)여학교 학생 100여명이 몸싸움을 벌여 식장이 아수라장이 됐다. 이 충돌은 송도고보 5학년생인 기혼 남성(22세)이 미리흠여학교 학생인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식을 올리려 한 것이 발단이 됐다. 아내 학교의 많은 여학생이 분노해 몰려왔고 "방해자가 잇슬 것을 예측한 신랑의 동무 되는 학생 백여 명은 결속하야 집을 통(鐵筒)가티 에워싸고" 막았다.(1927년 11월 14일자)

사회면 상단에 크게 보도된 이 소동은 근대화와 함께 높아진 아내들 목소리를 보여 준 사건이었다. 신식 교육을 받은 여성들은 남편의 축첩과 외도를 눈물과 한숨으로 참아내던 선배들과는 한참 달랐다.

1920년대 후반부터 조선일보 지면엔 남편의 학대와 외도에 강하게 맞서는 '젊은' 아내 모습이 자주 보인다. 어떤 여성은 남편이 '어엽분 기생'과 눈이 맞자 서울 시내 인사동 큰 길거리 한복판에서 남편을 붙잡고 '일대 활극을 연출'하며 싸웠고(1927년 7월 24일자), 남편과 싸우고 친정으로 가 있는데 남편이 찾아와 꾸지람하자 친정어머니와 합세해 남편을 구타한 아내(1927년 6월 7일자)도 있었다. 1929년엔 첩을 둘씩이나 둔 남편에게 맞서 맞바람을 피운 27세 여성이 법정에 서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조선일보는 이 사건을 "남편이 축첩하니/나도 간통한다"는 제목 아래 "근년에 처음 보는 진긔한 사실"이라며 놀라움을 얹어 보도했다.(1929년 1월 19일자)

부부 싸움 보도가 급증한 것도 이 시기의 특징이다. 1926년 6월 한 달에만 "남편이 싫다"는 여성 때문에 빚어진 각종 불화에 관한 사건이 17건이나 보도됐다. 안주(安州)경찰서에서 1926년 취급한 부부 불화에 관한 상담 중 9할은 '아내가 남편 싫다는 것'이었다.(1927년 1월 13일자)

1928년 9월 안석영(安夕影)은 그 시절 남편·아내 관계의 획기적 변화를 '사나희와 녀편네'라는 제목의 만평 시리즈로 10회에 걸쳐 연재했다. '부부 평등'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일부 아내가 '남편을 쥐고 흔드는' 세태가 재치 있는 글과 만화에 담겨 있다. 이 시리즈에서 아내의 모습이란, 말(馬)처럼 엎드린 남편 등 위에 올라타 채찍을 휘두르거나(1928년 9월 22일자), 남편이 선물을 사다 줘도 "깃껏 사다 준다는 게 요따위에요? 그 거지 가튼 것을 사들고 드러와서 얼넝얼넝하기야요?"라고 쏘아붙이는 오만한 여장부다.(1928년 9월 27일자) 남편이 외출할 때는 "꼭 열시에(들어와)! 긔생의 엽헤는 가지 안키로(약속해)"라고 다그친다.(1928년 9월 30일자)

1920년대란 남편이 바람피워도 "다른 여자에게로 맘을 옴기게 된 원인을 잘 생각하야 자긔 자신에 무슨 결점이 잇섯나 반성하여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황당한 말이 전문가 의견으로 소개되던 때였다.(1927년 1월 13일자) 그런 시기에도 소수 여자는 여권(女權)을 찾는 일에 앞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