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친왕 수첩, 영친왕비 일기 속엔…

"당신께서 오시는 후지산 저편 하늘을 멀리 바라보고 있으면 그리운 마음이 가득해집니다."

1919년 4월 7일, 영친왕비 이방자(李方子·1901~1989) 여사는 멀리 떨어진 약혼자 영친왕 이은(李垠·1897~1970)을 생각하며 시(詩) 한 수를 지었다. 색지에는 꽃병에 꽂힌 튤립과 함께 영친왕 모습을 연필로 쓱쓱 그려 넣었다. 국가와 민족을 초월해 사랑에 빠진 여인의 순수한 감정이 느껴진다.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정종수)이 재일교포 하정웅(72)씨가 기증한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과 영친왕 부부의 자료를 공개하는 특별전 '하정웅 기증전-순종 황제의 서북 순행과 영친왕·왕비의 일생'을 22일 개막한다. 하씨가 2008년 12월 주일본 한국대사관을 통해 기증한 영친왕비 사진과 서신류, 기타 유품 등 총 610건 중에서 엄선한 자료들이 선보인다.

영친왕의 휴대용 수첩도 내용이 처음 공개됐다. 영친왕이 일본을 비롯해 유럽·미주 지역을 순방하며 보고 들은 것을 작은 수첩(가로 8.1, 세로 5.2㎝) 67면 분량으로 꼼꼼히 기록한 것. "일본의 교육은 모방, 수입 교육이다. 제도, 방법도 모두 서양과 닮아있다. 종래부터 모방성이 풍부한 일본인은 특히 이 점을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메모가 눈길을 끈다.

1919년 한 해 동안 쓴 영친왕비 일기에는 결혼을 한 해 앞둔 신부로서의 설렘과 영친왕에 대한 그리움이 잘 드러나 있다.

순종 황제가 1909년 1월 27일부터 2월 3일까지 당시 남대문역(현 서울역)을 출발해 평양·신의주 등 한반도 서북지역을 순행한 일정을 기록한 '순종황제의 서북 순행' 사진첩도 전시됐다. 영친왕 부부의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의 사진 100여점과 영친왕비가 창덕궁 낙선재에서 사용했던 가구와 생활소품, 직접 만든 자수병풍과 회화도구 등도 볼 수 있다.

하정웅씨는 일본 오사카 출신의 재일교포 사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 1974년 봄 창덕궁 낙선재에서 미술품 바자회를 준비하던 영친왕비를 만난 것이 인연이 돼 그 후 오랫동안 영친왕비와 친분을 유지해오다 영친왕비 사후 그가 남긴 유품을 인수하게 됐다고 박물관은 전했다. 전시는 내년 1월 31일까지. (02)3701-7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