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과 함께 떨어지는 주가… 주식 시장도 가을을 탄다?

가을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아무것도 아닌 일에 우울해하는 남자들이 많다. 가을을 심하게 타는 남자들이다. 그런데 주식시장도 가을을 탄다. 특별한 사건이 없다면 가을과 겨울에 주가가 다른 계절보다 떨어진다는 것. 왜 남자와 주식시장은 가을을 타는 것일까.

◇낮이 짧아지면 남성 호르몬 줄어

의학에서는 가을을 타는 현상을 계절성 정서장애(SAD·seasonal affective disorder)라 부른다. 보통 인구의 10%가 이런 성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학자들은 SAD의 원인으로 계절에 따른 낮과 밤의 길이 차이를 꼽는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과)는 "가을에 접어들면 낮이 짧아져 햇볕을 쬐는 시간도 준다"며 "가을을 타는 남자는 햇빛 부족으로 인체에 비타민D 합성이 줄어드는 것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인체는 햇빛을 받아야 비타민D를 합성할 수 있다. 그런데 비타민D는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 분비를 조절한다. 테스토스테론은 성욕 외에도 다른 사람과의 경쟁과도 관련이 있다. 운동선수는 경기 직전이나 경기에서 이겼을 때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급격히 증가한다. 반대로 경기에서 지면 그 수치가 급감한다. 가을을 타는 남자는 테스토스테론이 주는 행복감과 권력감을 누리지 못한 채 쉽게 좌절감에 빠진다.

◇가을 타면 과감한 투자 꺼려

그렇다면 주식시장은 왜 가을을 타는 것일까. 캐나다 토론토대의 리사 크레이머(Kramer) 교수는 가을에 주가가 내려가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가을을 타는 학생들과 일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모의 투자 실험을 했다.

연구진은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에게 행동 평가를 한다고 알린 다음, 일정액의 보수를 줬다. 그리고 이 보수는 그냥 가져도 되지만 투자를 해도 된다고 했다. 투자는 확률이 50대 50으로 이기면 더 큰 이익을 보지만 지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실험 결과 SAD 성향을 가진 학생들일수록 겨울에는 안전한 투자를 선호했다. 하지만 여름에는 일반 학생과 비슷한 수준으로 모험적인 투자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가을을 타는 남자들은 가을~겨울에는 위험 부담을 꺼려 안전 위주의 투자를 한다는 말이다.

주식시장에서 안전 위주의 투자가 늘면 주가가 올라갈 리 만무하다. 결국 '가을 남자' 탓에 주식시장이 가을을 타는 것이다. 크레이머 교수는 국제학술지 '사회 심리학과 인성과학'에 발표한 논문에서 "투자 전문가들은 계절에 따라 고객의 위험 투자 성향이 바뀌는 것을 잘 감안해서 투자를 권유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테스토스테론 높으면 투자 수익도 높아

남성 호르몬이 투자 성향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에서 입증됐다. 미국과 스웨덴의 진화학자와 인류학자, 경제학자가 공동으로 18~23세 사이의 남자 대학생 9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투자 게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평균보다 높은 학생들이 일반적인 학생들보다 모험적인 투자 성향이 12%나 높게 나왔다.

이는 실제 투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영국 런던 뇌손상연구소는 런던의 남성 주식 투자자 17명을 대상으로 한 달 동안 테스토스테론 수치와 주식 투자 수익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평균보다 높았던 날에 한 달 평균보다 높은 투자 수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주식에 투자하면서 봄이 올 때까지 주식 시장을 아예 쳐다보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곽금주 교수는 "가을을 탄다고 감추거나 억제하지 말고 생물학적으로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며 "햇볕을 많이 쬐거나 운동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활동을 많이 하면 웬만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