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국인이다] "동족상잔의 참혹한 기억이 애국 청년을 원시로 떠밀었다"
입력 : 2011.11.22 03:05
[4] 반공포로 오일국은 왜 끝내 아마존에서 눈을 감았나
나라를 위해 청춘을 던지다 - 항일戰서 싸우다 중공군 편입, 6·25 투입됐다 포로로 잡혀
"조선 통일위해 싸운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동족상잔 전쟁"
나라를 버리고 밀림에 숨다 - 南·北 대신 브라질로 날아가
부두 전전하다 아마존까지… 마흔 다섯, 말라리아로 숨져
아마존에서 태어난 그의 아들 - 아이 셋과 아직도 수렵생활, 도시로 가잔 말에 빙긋 웃기만
아이들은 겉은 남루했지만 순진무구했다. 도무지 욕심이 없었다. 임씨가 갖고 간 보따리를 풀었지만 물건을 봐도 부러워하지도 않고 탐내는 기색도 없었다. 돈도 필요 없다고 했다. 라이터와 아스피린, 성냥, 청바지, 말라리아 약과 연고, 사탕, 신발, 장화 따위를 있는 대로 다 줬다. 임씨는 사진으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여기 보고 웃어라" 했다. 그제서야 다들 웃음을 지었다.
임씨가 권했다. "여기서 나가자. 이곳에 있다가 말라리아 걸리면 다 죽고 말 텐데 도시 나가서 살자. 장사든 취직이든 살 수 있도록 내가 도와 주마." 오씨는 빙긋 웃기만 했다. 끝내 따라 나서지는 않았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돌아오는 길 내내 오씨의 말이 임씨의 뒷머리를 눌렀다. "아버지는 속세를 떠나 살고 싶었다고 해요. 차라리 아마존 밀림에서 토인들과 살아야겠다고…."
10대에 항일전, 20대엔 동족상잔에 청춘을 던져야 했던 사람. 30대에 전쟁이 싫어 남한도 북한도 아닌 머나먼 브라질, 그것도 대처가 아닌 아마존 밀림을 택했던 사람. 빗발치는 총탄, 세 나라를 떠도는 운명도 무릎 꿇리지 못했던 그가 정글 속에서 말라리아에 생을 마감했다는 사연을 듣고 있자니 착잡했다. 브라질 반공포로 고(故) 오일국(1925~1970)씨.
1956년 2월 6일 그와 함께 브라질에 반공포로로 이민 왔던 임관택(83)씨는 그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일행 50명 중에서도 그는 잊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오씨는 6·25 때 중공군으로 참전했다가 포로가 됐다. 이른바 '팔로군(八路軍)' 출신. 팔로군은 '중국 국민혁명군 제8로군'의 약칭이다. 조선인이 많았다. 항일전에서 활약한 후 1947년 중국 인민해방군으로 편입됐다가 6·25 때 한반도에 투입됐다. 일본에 살던 오씨 부모는 만주로 농업이민을 갔다가 하얼빈에서 그를 낳았고 오씨는 15세 때 팔로군에 끌려갔다. 반공포로 중에는 팔로군 출신이 4명이나 됐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시절 오씨는 자기 얘기를 이렇게 털어놨다고 한다. "조선의 통일을 위해 중국에서 나왔다는 사실만 기억한다. 알고 보니 동족상잔 전쟁이었다. 유감스럽다."
1956년 2월 6일 그와 함께 브라질에 반공포로로 이민 왔던 임관택(83)씨는 그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일행 50명 중에서도 그는 잊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오씨는 6·25 때 중공군으로 참전했다가 포로가 됐다. 이른바 '팔로군(八路軍)' 출신. 팔로군은 '중국 국민혁명군 제8로군'의 약칭이다. 조선인이 많았다. 항일전에서 활약한 후 1947년 중국 인민해방군으로 편입됐다가 6·25 때 한반도에 투입됐다. 일본에 살던 오씨 부모는 만주로 농업이민을 갔다가 하얼빈에서 그를 낳았고 오씨는 15세 때 팔로군에 끌려갔다. 반공포로 중에는 팔로군 출신이 4명이나 됐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시절 오씨는 자기 얘기를 이렇게 털어놨다고 한다. "조선의 통일을 위해 중국에서 나왔다는 사실만 기억한다. 알고 보니 동족상잔 전쟁이었다. 유감스럽다."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한 반공포로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동료들이 "넌 어디로 갈래?" 물으면 오씨는 "난 부두로 가겠다"고 했다. 별다른 기술이 없었던 오씨는 파라나과 항구로 가서 부두 노동자로 전전했다. 북한군 장교 출신 임씨는 엔지니어로 취직했다. 언제인가, 임씨가 오씨를 찾아가봤다. 그는 커피 자루를 꿰매고 있었다. 임씨는 갖고 있던 돈을 주면서 '어디로 가든 꼭 알려달라'며 주소를 적어줬다. 임씨는 1958년 5월, 북부 바이아출신 일본계 여자와 결혼했다. 33세였다. 이듬해 12월 부부는 더 북쪽, 아마존까지 갔다. 그곳 일본인 후추 농장에서 일감을 찾았다. 그리곤 오씨와 소식이 끊겼다.
임씨가 다시 오씨의 궤적을 찾아간 것은 2년 전쯤. 아마존 마나우스 일본인 후추 농장에 가서 물었다. 브라질 안내인을 따라 정글 안으로 400~500㎞ 더 들어갔다. 배로 가서 다시 걸어 들어가야 했다.
숲 속에 오씨를 닮은 중년 남자가 있었다. 그는 불쑥 찾아온 동양인이 두려운 듯했다. "네 아버지 친구"라며 안심시켰다. 일본인 어머니에게서 난 그는 부친이 한국인인 줄 알고 있었다. 오용문. 50세라고 했다. 아마존에서는 '늙은이' 나이. 그의 입에서 아버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사투리가 심한 포르투갈어. 한국말도 조금 섞여들었다. "아버지는 내가 10살 때(1970년) 말라리아로 세상을 떴다. 몇 해 뒤 어머니도 말라리아로 숨졌다"는 얘기였다. 일본계인 자기 아내도 죽고 아들 둘과 딸 하나, 네 식구가 살고 있다고 했다. 장남이 15살이고 다른 아이들은 한두살 터울들이라 했다. 아이들은 한국말을 거의 못 했다.
반(半) 토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화전농과 수렵을 병행했다. 텃밭에는 옥수수와 감자가 자라고 있었다. 길목에 올가미를 숨겨두고 야행 짐승을 잡거나 옥수수밭에 대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덫을 놓아 새를 잡는다. 낚시로 고기도 잡아먹는다. 100m쯤 더 들어가니 작은 강이 나왔다. 고깃덩이가 빨래처럼 줄에 널려 있었다. 악어를 잡아서 토막 낸 고기가 꾸득꾸득 말라가고 있었다. 구식 사냥총도 있었다. 멧돼지며 카피바라(설치류 중 덩치가 가장 큰 동물), 날짐승 따위를 잡는다고 했다. 집은 나무 위에 있었다. 뱀이나 짐승을 피해기 위해서다. 임씨는 직접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봤다. 못도 쓰지 않고 나무로만 엮은 바닥 위에 짚을 말려 자리를 깔아놓은 상태였다. 깨끗했다. 이불도 있었다. 낮의 밀림은 뜨겁지만 밤이 되면 춥다. 가솔린 냄새가 났다. 말라리아모기를 막으려 몸에 칠하고 지낸다고 했다. 네 식구는 단란해 보였다.
임씨가 다시 오씨의 궤적을 찾아간 것은 2년 전쯤. 아마존 마나우스 일본인 후추 농장에 가서 물었다. 브라질 안내인을 따라 정글 안으로 400~500㎞ 더 들어갔다. 배로 가서 다시 걸어 들어가야 했다.
숲 속에 오씨를 닮은 중년 남자가 있었다. 그는 불쑥 찾아온 동양인이 두려운 듯했다. "네 아버지 친구"라며 안심시켰다. 일본인 어머니에게서 난 그는 부친이 한국인인 줄 알고 있었다. 오용문. 50세라고 했다. 아마존에서는 '늙은이' 나이. 그의 입에서 아버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사투리가 심한 포르투갈어. 한국말도 조금 섞여들었다. "아버지는 내가 10살 때(1970년) 말라리아로 세상을 떴다. 몇 해 뒤 어머니도 말라리아로 숨졌다"는 얘기였다. 일본계인 자기 아내도 죽고 아들 둘과 딸 하나, 네 식구가 살고 있다고 했다. 장남이 15살이고 다른 아이들은 한두살 터울들이라 했다. 아이들은 한국말을 거의 못 했다.
반(半) 토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화전농과 수렵을 병행했다. 텃밭에는 옥수수와 감자가 자라고 있었다. 길목에 올가미를 숨겨두고 야행 짐승을 잡거나 옥수수밭에 대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덫을 놓아 새를 잡는다. 낚시로 고기도 잡아먹는다. 100m쯤 더 들어가니 작은 강이 나왔다. 고깃덩이가 빨래처럼 줄에 널려 있었다. 악어를 잡아서 토막 낸 고기가 꾸득꾸득 말라가고 있었다. 구식 사냥총도 있었다. 멧돼지며 카피바라(설치류 중 덩치가 가장 큰 동물), 날짐승 따위를 잡는다고 했다. 집은 나무 위에 있었다. 뱀이나 짐승을 피해기 위해서다. 임씨는 직접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봤다. 못도 쓰지 않고 나무로만 엮은 바닥 위에 짚을 말려 자리를 깔아놓은 상태였다. 깨끗했다. 이불도 있었다. 낮의 밀림은 뜨겁지만 밤이 되면 춥다. 가솔린 냄새가 났다. 말라리아모기를 막으려 몸에 칠하고 지낸다고 했다. 네 식구는 단란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