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시대] 경제거인 틈바구니 속 한국, 中·日에 두 걸음 앞서다

한국이 EU에 이어 미국과도 관세 없이 교역하게 됨으로써 한국은 한·중·일 무역 전쟁에서 월등한 우위를 점하게 됐다.

세계 양대 경제권인 미국·EU를 파트너로 잡음으로써 세계경제 규모의 61%를 차지하는 지역과 자유롭게 통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세계 주요 공업국 중에선 가장 높은 비율이다. 반면, 중국과 일본은 자유롭게 통상할 수 있는 지역이 각각 17%에 불과하다. 또한 전체 우리나라 무역에서 FTA를 통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34.2%로 높아진 반면, 중국과 일본은 각각 19.5%, 18.2%에 머물고 있다. 중국과 일본이라는 경제 거인 틈바구니에 낀 한국이 무역에서만은 몇 발자국 앞섰다는 의미가 있다.

다급해진 중국과 일본은 다른 나라와 FTA를 추진하고 있지만, 상대국들이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해 진척이 느리다. 중국과 일본은 미국이나 EU 어느 한 곳과도 FTA를 맺지 못하고 있다.

◇날개 단 한국 무역

한·미 FTA는 고구마 줄기처럼 한국이 추진해온 다른 FTA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다. 허윤 서강대 교수는 "한국이 EU에 이어 미국과도 FTA를 맺게 돼 한국이 다른 나라와 FTA 협상을 하며 확실한 힘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한국 시장에서 다른 나라는 가격 경쟁력을 잃어 도태될 수밖에 없다. 결국 한국의 무역 상대국은 한국 시장을 잃지 않기 위해 한국과 FTA 체결을 서두르게 되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EU 등 세계 최대 경제권을 포함해 45개국과 FTA를 맺었고, 협상이 진행 중인 국가만 해도 12개국에 이른다. 앞으로 중국, 일본과 FTA 체력 격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당장 미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고 있는 캐나다·멕시코가 한국과 FTA를 맺자고 요구할 전망이다. 캐나다와 협상이 타결되면 한국 농산품 시장에서 점유율 하락이 우려되는 호주와 뉴질랜드도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된다. 이미 몸이 단 두 나라는 국제회의 석상에서 한국에 FTA 체결을 수차례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제 우리나라는 바쁘게 달려온 걸음을 늦추고 여유 있게 나머지 FTA 협상에 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속만 태우는 중국·일본

중국과 일본은 각각 17개국, 15개국과 FTA를 맺었다. 그마저도 동남아시아나 중남미의 작은 경제권과 맺은 게 대부분이다. 미국·EU 등 주요 경제권을 상대로 한 FTA는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중국은 투자·서비스 분야에서 문을 굳게 걸어 닫고 있어 상대국이 별 이득을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일본은 일본 내 공산품 분야 관세가 이미 매우 낮기 때문에 상대국이 얻을 실익이 별로 없을 뿐 아니라 1억개가 넘는 비(非)관세 무역 장벽이 커다란 걸림돌로 길목을 막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은 아시아 지역에서 주도권을 넓히는 차원에서 중화권 상대 FTA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엔 경제적 효과보다는 정치적 의미가 더 큰 셈이다. 일본은 최근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참여를 선언했지만, 경제적 효과는 별로 없는 것으로 보인다. 안덕근 서울대 교수는 "일본이 TPP에 참여하는 건 한·미 FTA 견제용일 뿐 일본이 얻을 무역 효과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