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냄비 자선하는 5人의 냄비박사

"구세군 자선냄비는 찌그러질수록 좋아요. 그만큼 기부 손길을 많이 탔다는 뜻이잖아요. 찌그러지면 우리가 수리하니 걱정 마세요."

23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구세군 자선냄비 회전목마 체험관' 기증식에서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중년 남자 5명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들은 독일 주방용품 업체 휘슬러(Fissler)의 한국 지사 대리점 사장들이다. 이들은 회사와 함께 2004년부터 낡은 구세군 냄비를 바꿔주고, 미니 자선냄비 등 냄비 총 1만5503개를 구세군에 기증했다. 서울 역삼동대리점 석도태(56)씨, 양재동대리점 이봉학(50)씨, 서초동대리점 김준수(55)씨와 부산 연제구대리점 정태웅(56)씨, 충북 청주시대리점 변진수(61)씨 등 5명의 활약상이다. 회사 사람들은 TV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F4(꽃처럼 아름다운 4명)를 따 이들을 'F5'라고 부른다.

이들과 자선냄비의 인연은 2003년 겨울 시작됐다. 당시 강남구 역삼동 본사를 출퇴근하던 직원들은 지하철 강남역 앞에 세워진 찌그러진 빨간 양철 자선냄비를 봤다. 온종일 냄비와 씨름하는 직원들의 눈에 이 낡은 냄비가 단번에 들어왔다. 구세군이 1965년부터 쓰던 냄비였다.

이 F5는 낡은 자선냄비를 교체해주기로 하고 어느 때보다 정성을 들여 만들었다. 녹이 쉽게 슬고 잘 찌그러지는 기존 양철 대신 강철을 썼고, 동전을 넣을 때 경쾌한 소리가 나도록 깊이도 조절했다. 모금액이 도난되지 않도록 냄비 구멍 크기도 조절했다. 석도태씨는 "새로 만든 자선냄비에는 정품 휘슬러 냄비와 같은 손잡이를 달았다"고 했다. 2004년 말 자선냄비 300개를 기부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들은 2개월에 한 번씩 모임을 갖고 회비를 걷는다. 매년 이 F5와 가족, 영업점 직원, 지인 등이 4800만원 정도를 모은다. 이 돈과 회사 측의 지원금을 합해 매년 형태가 새로운 냄비를 만들어 후원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봉학씨는 "2005년에는 관공서와 은행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미니 구세군 자선냄비 1만개, 2006년에는 365일 기부할 수 있는 사랑의 모금함 4000개, 2007년에는 기업의 자판기 옆에 세워두고 동전 등을 기부받을 수 있는 기업형 자선냄비 1000개 등을 후원했다"고 말했다.

매년 자선냄비 50~100개의 수리도 도맡는다. 페인트가 벗겨진 곳은 다시 빨갛게 칠하고, 찌그러진 곳은 펴서 전달한다. "우리가 만든 자선냄비가 추운 겨울 따뜻한 사랑을 나누는 손길을 모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환하게 웃는 이들은 흰 수염이 없어도 진짜 산타 할아버지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