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성마비 시인들… 세상을 詩로 말하다

"여름, 날, 에, 햇살의, 이름, 으로."

자주 끊어지고 듣기 불편했지만 무대에 선 김준엽(41)씨의 목소리는 객석을 휘감았다.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더듬거렸지만 김씨는 자신이 쓴 시를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시 낭송이 끝나자 관객들은 모두 기립박수를 보냈다. 김씨는 제대로 고개를 숙일 수도 없어 간신히 고개를 흔들었다.

24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는 뇌성마비 장애인들이 특별한 행사를 가졌다. 뇌성마비를 극복하고 시인으로 당당히 등단한 시인 6명이 '제10회 뇌성마비 시인들의 시 낭송회'를 열었다. 이번 행사에는 김씨를 비롯해 뇌성마비 1급 장애를 딛고 매년 10여편 이상 시를 써온 뇌성마비 시인 권수애(여·39)씨, 박동수(35)씨, 이내운(46)씨, 정훈소(48)씨, 최윤정(여·52)씨 등 6명이 무대에 섰다.

김준엽씨는 생후 넉 달 만에 황달을 앓다가 뇌성마비 장애를 안고 살게 됐다. 걷는 것은 물론이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김씨는 초등학교 문턱도 넘지 못한 채 집 안에만 틀어박혀 지내야 했다.

하지만 김씨는 한용운·서정주 등 시인들을 책에서 만났다. 그리고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김씨는 "말로는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글로 표현하고 싶었다"며 "스무 살 때부터 입으로 연필을 물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시를 쓰기 시작한 지 6년 만인 지난 1996년 김씨는 PC통신 하이텔의 사이버 문단에 시를 연재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어엿한 시인으로 문단에 자리 잡았다. 김씨는 "내 마음, 심정을 말로 하면 사람들이 못 알아듣지만 시로 쓰면 알아듣는다"며 "시를 쓰면 내 마음 한구석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시집을 4권이나 낸 최씨는 "시집을 보면서 함축적인 언어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뇌성마비 장애인의 특성상 말을 길게 하지 못하는 대신 함축적인 단어로 많은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말이다. 최씨는 현재 글마을이라는 장애인 단체에서 뇌성마비 장애인을 대상으로 글쓰기 강연도 하고 있다. 최씨는 "많은 뇌성마비 장애인과 시를 통해,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뇌성마비 시인들을 격려해주기 위해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는 시로 유명한 시인 정호승(61)씨와 문학평론가 조병무(74)씨 등이 참석했다. 조씨는 "매년 참석해왔는데 점점 긍정적으로 살고 삶의 희망을 노래하는 뇌성마비 시인들의 모습을 보니 너무 기쁘다"며 "더 많은 사람이 시 쓰는 즐거움을 알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씨는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을 시로 표현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아름답다"며 "시를 통해 이런 아픔과 고통을 보듬는 자리가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