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척 사라진 사진, 진실을 말하다

그녀의 렌즈는 역사를 상기시키고, 그의 카메라는 사건을 환기시킨다. 둘 다 사람은 찍지 않는다. 칸디다 회퍼(Hofer·67)와 토마스 데만트(Demand·47). 둘 다 현대 사진 메카인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 출신으로, 작품 가격도 점당 1억원 이상을 호가한다. 복제 가능한 사진 작품 가격으로는 이례적이다. 미술 평론가 강수미씨는 "두 작가는 개념적·실험적이면서도 미학적으로도 뛰어난 이미지를 제공,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했다. 서울에서 이 두 사람의 개인전이 동시에 열린다.

◇칸디다 회퍼: 인기척 없는 공간의 역사성

"내성적인 성격이라 사람들을 방해하기가 싫었다. 아무도 없을 때를 골라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오히려 사람이 없을 때 장소의 정체성이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뉴욕을 방문 중인 칸디다 회퍼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제갤러리의 회퍼 개인전에는 독일 베를린의 노이에 미술관 전시실을 찍은 사진 12점이 나온다. 2차대전 때 파괴된 후 방치됐다가 2009년에 재개관했지만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있다. 전시 하이라이트는 '이집트 최고 미인' 네페르티티 왕비 흉상이 안치된 미술관 북쪽 홀을 촬영한 사진. 자연광으로만 찍은 이 사진은 엄격한 대칭 구도와 쨍하게 맑고 서늘한 느낌이 특징이다. "압도적인 돔의 건축양식과 흉상이 발하는 고요함의 대비를 담고 싶었다."

회퍼는 궁전, 도서관, 오페라 극장 등 유럽의 공공장소를 지속적으로 찍어왔다. 인기척 없는 그의 사진은 역설적으로 그 공간을 거쳐간 역사적 인물을 상기시킨다. 사진심리학자 신수진씨는 "회퍼 작품이 걸린 장소는 유럽 궁전처럼 역사적인 공간이 된 듯한 착각을 주고, '역사 주인공'이 되고싶은 욕망을 충족해주기 때문에 인기"라고 했다.

◇토마스 데만트: 종이로 재현한 사건 현장

"세관을 통과할 때마다 곤혹스럽다. 세계 곳곳에서 사들인 종이 뭉치 때문에 날 이상하게 보는 경우가 많아서."

종이, 가위, 접착제는 토마스 데만트에게 카메라 못지않게 중요한 작업 도구. 조각을 전공한 그는 뉴스 현장을 실물 크기 종이 모형으로 재현한다. 사진으로 기록한 후 종이 모형은 폐기한다. PKM 트리니티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데만트는 "종이는 값싸고, 가볍고, 친근한 재료"라고 했다. 데만트 작품에도 인물은 없다. "작품에 사람이 있으면 관객은 장소보다 그 사람 이야기에 주목하니까."

2011년작 '조사(弔辭)'는 빨간 양초 수십 개에 불이 켜져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빛이 반사되는 종이로 불꽃을 만들고 이중 노출을 주어 사진을 찍은 것. "참사 후 신문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 이미지가 실린다. 시간이 지나면 사건 본질은 사라지고 '촛불 행렬'만이 기억에 남는다." 이 밖에도 후쿠시마 원전 사태 때의 발전소 제어실을 재현한 사진 등이 나온다. 강수미씨는 "조형미술과 사진을 결합한 데만트 작품은 스펙터클하면서도 디테일이 강해 관객을 매혹한다"고 했다.

▶칸디다 회퍼 개인전, 내달 25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02) 735-8449

▶토마스 데만트 개인전, 내년 1월 10일까지 서울 청담동 PKM트리니티 갤러리, (02) 515-94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