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F(상장펀드) 시장 선점… 삼성, 펀드운용규모 1위 탈환

500조원을 굴리는 국내 자산운용업계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박현주 돌풍'을 일으키며 2007년 이후 부동의 1위를 지켜왔던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최근 삼성자산운용에 역전당했다. 2008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벼르고 있던 투자자들이 최근 수익률이 회복되자 투자금을 대거 빼갔기 때문이다. 반면 업계 5~6위를 달리던 KB자산운용은 최근 3위로 올라섰다. 펀드 수익률이 좋았던 데다 KB국민은행이라는 막강한 판매망이 받쳐준 결과다.

◇어윤대 효과? KB자산운용 3위로

2007년 펀드 운용 규모 14조원대로 업계 6위였던 KB자산운용은 최근 21조원을 돌파하며 업계 3위로 올라섰다. 직원 117명으로 5위권 내 다른 운용사(170~400명)에 비해 규모는 가장 작은 회사다. 하지만 최근 자금이 몰리면서 지난 2분기 108억원의 사상 최대 순이익을 냈다. 직원 1인당 1억원을 벌어 5대 운용사 중 생산성(수익기준)이 가장 높았다. KB밸류포커스 펀드의 작년 수익률이 46%로 일반주식형펀드 1위를 차지하는 등 수익률이 높았던 것이 주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펀드를 운용한 최웅필 매니저는 작년 연말 사내 업무 유공자로 선정돼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의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KB국민은행의 막강한 판매망 덕택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작년 7월 취임한 어윤대 회장이 "명실상부한 금융지주로 크려면 은행 외 계열사들이 커야 한다"는 취지로 KB자산운용을 위해 KB국민은행의 판매망을 풀가동했다는 것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 1~9월 중 KB국민은행이 판매한 펀드의 52%는 KB자산운용 것이었다. 4년 전 이 비중은 41%였다.

◇삼성, ETF 시장 선점으로 1위 역전

삼성자산운용은 2007년 미래에셋이 혜성처럼 떠오른 뒤 만년 2등을 면치 못했다. 그러다 2009년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2009년에 취임한 김석 사장이 "삼성그룹의 이미지에 걸맞게 글로벌 최고가 되자"며 직원들을 독려했고, 펀드매니저들에겐 재량권을 최대한 넓혀줬다. 성과는 펀드 수익률 개선과 투자금 유입으로 나타났다.

삼성의 대표펀드 중 하나인 코리아대표그룹펀드는 수익률이 상위권에 올라 올 들어 삼성자산운용의 국내주식형펀드가 2조원을 더 빨아들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삼성은 또 ETF(상장펀드) 도입 초기인 2001년 남들이 관심 없던 ETF 개발·운용에 집중 투자해 큰 성과를 냈다. 삼성은 ETF 부문에서만 총 5조원의 자금을 끌어들였다. 이 같은 조기 선점 효과로 삼성은 국내 ETF 시장의 56%를 점유하고 있다. ETF를 총괄한 배재규 상무는 내년 초 상당한 성과급을 받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반면 '박현주 열풍' 덕에 펀드 업계 1위를 자랑하던 미래에셋은 2008년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인사이트펀드 등 대표펀드들의 수익률(당시 투자기간 1년 기준)이 마이너스 30~40%대로 고꾸라졌다. 이후 수익률을 서서히 회복했지만, 혼이 난 투자자들은 원금을 회복하자마자 속속 돈을 빼갔다. 올 상반기엔 일주일에 1조원씩 빠지기도 했다. 미래에셋 펀드 자산규모는 4년 만에 반쪽인 33조원대로 내려앉았다.

◇내년부터 업계 순위 집계 방식 달라져

자산운용업계의 지각변동은 내년에 더 속도를 낼 전망이다. 금융투자협회가 내년 1월부터 자산운용사 순위 집계 방식을 크게 바꾸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펀드 평가금액(총 320조원)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겼지만, 앞으로는 연기금·계열사·기관이 투자를 일임한 자금(총 220조원)까지 포함해 순위를 매긴다. 이렇게 되면 보험사를 계열사로 가진 운용사들의 순위가 크게 오르게 된다. 삼성자산운용은 삼성생명이 맡긴 자산 70조원이 추가되면서 독보적인 1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역시 보험사를 계열사로 갖고 있는 교보악사자산운용, ING자산운용의 순위도 크게 올라간다. ING자산운용의 경우 현재 업계 35위지만, 일임 자금을 합치면 단숨에 업계 9위로 올라선다. 새 방식으로 집계된 업계 순위가 자리를 잡으면 운용사별 브랜드 이미지가 달라져, 업계의 지각변동이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