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女帝 "고국 가서 마이웨이"

"막상 떠난다고 생각하니 슬프네요. 한국 후배들을 국제 대회서 자주 만날 수 있다고 혼자 자꾸 위로합니다. 두 나라 여성 기사 사이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많을 거예요. 뒤돌아 보니 꽤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한국 생활은 정말로 행복했습니다. 모든 분께 감사드려요."

세계 바둑 여제(女帝) 루이나이웨이(芮乃偉·48) 九단이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그녀는 다음 달 남편 장주주(江鑄久·49) 九단과 조국인 중국으로 돌아간다. 한국에 정착했던 1999년 3월 이후 12년 8개월 만의 귀향이다.

"언젠가는 돌아가겠다고 쭉 생각해 왔어요. 바둑 꿈나무를 키워보겠다는 생각, 이제는 연로하신 부모님과 지내고 싶다는 소망도 한몫씩 했고…. 두어 달 전 중국기원으로부터 '돌아오겠다면 환영한다'는 전갈을 받고 단안을 내렸습니다."

중국기원과 불화로 연인 관계였던 장주주와 1990년 고국을 떠난 이후 루이는 10년간 일본·미국 등에서 떠돌이 생활을 해 '바둑 집시'로 불렸다. 프로 제도가 활성화된 일본에서 활동하길 원했으나 일본 여류 프로는 이 세계 최강자의 진입을 봉쇄했다. 이때 두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준 곳이 한국이었다.

"짜릿한 승부 바둑 세계로 돌아오자 날아갈 것 같았어요. 그 뒤 기사 생활의 꽃도 여기서 피웠으니 정말 한국에 톡톡히 신세 진 셈이죠." 그녀는 이창호와 조훈현을 연파하고 우승했던 2000년 국수전을 최고 순간으로 기억한다. 세계 바둑 사상 여성이 혼성 대회를 정복한 전무후무한 사건이다.

루이가 가진 기록은 하나둘이 아니다. 세계 첫 여성 九단(88년), 세계 혼성 대회 여성 최고 성적(4강·92년 잉씨배)을 비롯해 우승이 37회에 달한다. 한국 정착 후 따낸 것만 30개(국내 26·국제 4)였다. 이런 독보적 행진에 국내 매스컴이 붙인 '마녀'란 별명은 본인 거부로 '철녀(鐵女)'로 바뀌면서 또 화제가 됐다.

그러나 루이가 한국에 빚만 진 것은 아니다. 날이 밝으면 빠짐없이 한국기원에 나와 연구하는 그녀를 보며 한국의 어린 기사들은 기량은 물론 정신력까지 배우며 성장했다. 한국 여성 바둑의 세계 정상권 도약에 절대적 기여를 한 셈. 한국 여성 기전 3개 모두를 여전히 석권 중인 그녀는 "도전제인 여류명인 타이틀은 곧 반납할 생각"이라고 했다.

루이는 이미 3개월 전 고향인 상하이에 바둑 도장을 남편과 함께 연 상태다. '선수'로 활동할 소속 팀도 상하이로 결정됐다. "그래도 한 주의 절반은 베이징서 지낼 생각이에요." 상위권 기사 대부분이 활동하는 곳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녀의 바둑 열정은 나이가 들수록 더 뜨거워지고 있다. 루이 九단은 28일 시작된 GS배 예선에 마지막으로 출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