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아빠 역 맡을 배우 동나… 명품 조연, 주연보다 귀하신 몸

탤런트 반효정(68)은 월·화요일엔 성격 화통한 병원장(KBS '브레인')이지만 토요일엔 근엄한 할머니(MBC '천번의 입맞춤')가 되고 일요일 아침엔 종갓집을 홀로 지키는 여인(KBS '산 너머 남촌에는')으로 변신한다. 탤런트 문정희(35)는 평일엔 철없는 답답한 남편(KBS '당신뿐이야') 때문에 가슴을 치고 주말엔 잘나가는 사촌 동생이 부러워 배앓이를 한다(SBS '천일의 약속').

'조연(助演) 전성시대'다. 조연배우들이 주연배우보다 더 바쁜 시대다. 지상파 3사와 케이블 TV 드라마는 물론 종합편성채널 개국까지 겹쳐 한 해 제작 드라마 편수가 껑충 뛰면서 안정된 연기력을 보여줬던 일부 조연들은 이제 웬만한 주인공보다 섭외하기가 더 힘들어졌다는 게 방송가 얘기다. 이처럼 수요가 많아지니 회당 출연료도 덩달아 뛰고 있다고 한다.

제작사 대표 A씨는 요즘 새로 제작에 들어간 드라마 인물 관계도를 펼쳐놓고 매일 한숨을 쉰다. "겹치기 출연을 피하고 싶어도 피할 방법이 없어요. 연기 되는 조연급들은 벌써 2~3편씩 촬영하고 있으니 말이죠."

엄마·아빠 역할을 할 배우는 이미 '동이 난' 상황. 이순재·김용건·박인환·김자옥·김해숙·김혜옥·박준금·문희경·김갑수 등은 자상하고 따뜻한 모습은 물론 서릿발처럼 호통을 치는 무서운 얼굴까지 자유자재로 보여줄 수 있는 연기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여러 편 드라마에 동시 출연 중이다. 반효정·양희경 같은 연기자는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드라마를 쉰 적이 없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 한 PD는 "제작진 사이에선 바람기 많거나 무게 잡는 남편 역할은 한진희·임채무·길용우가 돌아가며 연기하고, 사고뭉치 아빠 역할은 안내상·안석환·선우재덕 등이 순서대로 찍는다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라고 했다.

연기파 배우 캐스팅이 이처럼 힘들다 보니 특정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연기 호흡을 그대로 다른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조연 커플까지 나온다. MBC '반짝반짝 빛나는'에서 부부로 나왔던 길용우·고두심이 3개월 만에 SBS '내일이 오면'에서 또 부부로 나온다. SBS '시크릿 가든'에서 코믹 연기를 주고받았던 김지숙·이병준은 MBC '나도, 꽃'에도 나란히 섭외됐다.

이런 '수요 초과' 상황은 일부 연기파 조연 배우 출연료의 급등으로 이어졌다. KBS 이나정 PD는 "방송사 자체 제작 드라마는 출연료가 기본적으로 정해져 있어서 큰 차이가 없는 반면, 외주 제작사들은 요즘 조연 배우 출연료 때문에 무척 고심하더라"고 했다. 한 외주사 대표는 "지난 해만 해도 회당 800만~900만원씩 받던 이른바 '명품 조연'들이 요즘엔 2000만원 안팎의 출연료를 요구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했다. 다른 외주제작사 관계자는 "할머니·어머니 역할을 주로 하는 중견 조연들의 경우 일일드라마 한 회당 300만원 안팎을 받았는데 요즘은 700만~800만원씩으로 올라갔다고 한다"고 했다.

이처럼 조연 출연료가 인상되면서 일부 연기파 조연들은 주연급보다 더 수입이 낫다는 얘기도 들린다. "주연들은 촬영분량이 많아 겹치기 출연이 어려운 데 반해 조연들은 출연 분량이 적어 촬영장소 사정만 허락하면 겹치기출연이 가능한 데다 한 회에 한 신만 찍어도 출연료가 나오기 때문에 주연을 능가하는 수입을 얻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 제작사 대표는 "김해숙 같은 일부 연기자는 이제 조연이라고 하기도 힘들다. 인기도 출연료도 주연 수준"이라고 했다.

"인재가 적다고만 할 게 아니라 연극계 등에서 활발히 숨은 인재들을 발굴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천일의 약속'의 김수현 작가는 '인생은 아름다워' 촬영 때 겹치기 출연하는 조연배우들을 피하기 위해 한동안 방송에 나오지 않았던 중견 탤런트 고 박주아씨와 최정훈씨를 끌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