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도쿄 오아시스… 속도 중독된 사회… 당신은 느림의 위안을 아는가

흔들리는 카메라가 달리는 차 위에서 도쿄의 밤거리를 비추며 영화는 시작된다. 쉼 없이 달리는 자동차 헤드라이트와 거리의 신호등, 그리고 건물 외벽 네온사인이 도시를 어지럽게 채운다. 하지만 그 안에 사람의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다. 영화 '도쿄 오아시스'(마쓰모토 가나·나카무라 가요 공동감독)는 쓸쓸한 대도시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그린 영화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지만 아무도 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무명 여배우 도코(고바야시 사토미)가 우연히 세 사람을 만나는 여정을 따라 영화는 전개된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도코는 어느 밤 상복(喪服) 차림으로 촬영장을 뛰쳐나온다. 그는 야채배달원 나가노(가세 료)의 차에 올라타 무작정 고속도로로 향하다가, 심야 영화관에서 과거 시나리오 작가였던 영화관 직원 기쿠치(하라다 도모요)와 재회하고, 동물원에선 연거푸 미술대학 입시에 떨어진 5수생 야스코(구로키 하루)를 만난다.

영화 속 인물들은 항상 간격을 두고 앉는다. 대화도 느릿느릿 전개된다. 등장 인물들이 내뱉는 몇 마디로 그들의 삶을 유추할 뿐이지만, 쓸쓸함과 외로움이 물씬 느껴진다. 83분 동안 별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느릿느릿 주고받는 대화가 영화의 전부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져 있다. 도시의 외로운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의 외로움과 닮아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는 역설이다.

'도쿄 오아시스'는 저예산 영화 '카모메 식당' '안경' '수영장'의 제작진이 만들었다. 느릿느릿한 어조로 상처받은 내면을 담담히 그리는 '슬로 무비(slow movie)' '치유 영화(healing movie)' 계보 위에 있는 영화다. 12월 1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이것이 포인트]

#장면
고속도로 휴게소 주차장에서 허공에 대고 배구 놀이를 하는 도코와 나가노. 사소한 공통점이 낯선 이의 경계를 허물고 한 팀이 되게 한다.

#대사
"세상이 넓으니 어쩌니 해도 이 도시에 살다 보면 다 잊게 되죠." (88만원 세대 야스코와 헤어지며 도코가 던지는 말.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식의 훈계보다 공감이 된다.)

#이런 분들 보세요
각박한 세상에 마음 둘 곳 없다고 느끼는 청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