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이 관세 인하 혜택 보도록 유통단계 살펴야"

한·미 FTA(자유무역협정)가 우여곡절 끝에 지난 22일 국회를 통과했다. 거대 미국 시장의 빗장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한·미 FTA는 우리나라에 기회인 동시에 도전이다.

이에 국내 통상학계를 대표하는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장과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지역연구소 소장),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FTA 교수연구회 회장)가 한 자리에 모여 한·미 FTA 비준의 의미와 앞으로 통상정책의 과제에 대해 대담을 가졌다.

세 사람은 한·미 FTA가 한국의 선진화를 앞당기는 기틀이 될 것이란 점에 인식을 같이 했지만, 한·중 FTA의 필요성이나 통상절차법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을 보이기도 했다.

◇외국인 투자 유입으로 고용 창출 기대

―한·미 FTA가 내년 1월에 발효될 전망이다. 의의는?

박태호="한국을 경유해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외국인 투자가 중국, 일본, 유럽 등으로부터 유입될 수 있다. 고용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최병일="세계 총생산의 25%를 차지하는 미국 시장에서 다른 경쟁국보다 유리하게 교역 및 투자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 스스로의 의지와 결단으로 확보한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FTA는 자유무역협정인 동시에 '선진화를 향한 기틀(Framework Toward Advancement)'이다."

―한·미 FTA 비준과정에서 최루탄이 국회 본회의장에 터지는 등 정치권의 대립이 극심했다. 비준과정을 평가한다면?

허윤="국익을 위한 초당적 논의와 협상은 실종된 채 일부 유권자를 의식한 할리우드 액션과 폭력적 선동이 난무했다. 통상정책은 사라지고 통상정치만 판치는 부끄러운 비준 과정이었다. 여의도의 시계는 오래 전에 멈추었다."

최병일="독소조항 시비 속에 정작 피해산업에 대한 세밀한 대책 논의는 실종됐다."

◇통상절차법에 담아야 할 것

―이번에 여당이 야당의 요구를 수용해 통상절차법을 수용했지만,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

박태호="정부가 주요 국제통상 협상의 내용과 진전 상황을 국회에 충분히 보고하게 만들자는 취지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민감한 협상 내용이나 전략이 미리 공개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보고 내용의 범주와 공개 여부 등 구체적인 운영 방안은 사전에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허윤="외부 협상의 효율성은 떨어지겠지만, 비준 과정에서의 내부 갈등을 완화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국회와 시민단체, 피해업계가 정치력을 동원하여 저지 운동에 나서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합리적 수준에서 국회와 이해단체의 권한과 책임을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해 통상과정에 참여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최병일="통상절차법 없이 지금도 국회는 행정부로부터 협상 진행 과정을 보고받을 수 있고, 협상 과정에서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다. 왜 굳이 통상협상에만 절차법을 규정해야 하는지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행정부가 절차법에 따라 협상을 진행시키고, 그 결과를 가져오면 국회는 어떤 방식으로 하겠다는 내용도 절차법에 담아야 한다."

◇소비자 가격 인하가 FTA의 진짜 효과

―경제 효과를 높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최병일="미국산 제품의 수입이 급증하는 걸 국내 산업의 피해라고 생각하는 것은 철저하게 소비자를 무시한 편향된 시각이다. 언제까지 한국 소비자는 국제 가격보다 더 비싼 제품을 구매해야 하는가. 국내 독점 구도가 완화되고 소비자 후생을 높이기 위한 경쟁이 과열돼 물가 상승 압력도 완화되고 가계 실질소득이 증가하길 기대한다."

허윤="관세 인하가 소비자 가격 인하로 이전되는 채널을 교란하는 행위, 예를 들어 국내 유통시장에서의 수입품 사재기나 담합행위, 혹은 국영 유통공사의 시장지배력 남용이나 농산물 쿼터배분의 합리성 등을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개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참깨나 콩 등 정부가 수입해서 유통하는 품목의 경우 FTA 대상국에서 싸게 수입하고도 국내 농민 보호를 명분으로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설정하는 건 아닌지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기업들은 세계 지도를 펼쳐놓고 우리와 FTA를 맺은 나라로부터 관세 인하·철폐 효과를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원산지 기준 등을 잘 살펴야 한다."

박태호="지금까지 연구기관과 정부가 밝힌 한·미 FTA의 경제효과는 참고자료일 뿐, 미국과의 FTA를 통해 얼마만큼 경제적 이득을 달성하느냐는 우리가 한·미 FTA를 얼마만큼 잘 활용하느냐에 달려있다. 지금까지 한·미 간에 전혀 무역이 이뤄지지 않았던 분야도 새롭게 발굴될 수 있는 만큼 우리 기업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예측 가능한 정책으로 분쟁 소지 줄여야

―한·미 FTA 이행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할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가?

박태호="한·미 양국 간에는 통상장관회의 등 여러 채널이 구축되어 있고 한·미 FTA와 관련해서는 서비스투자 위원회, 역외가공지역 위원회, 무역구제관련 위원회 등 다양한 협의체가 가동될 수 있다. 앞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은 이런 채널을 통해 협의할 수 있고, 양자 협의를 정례화해 문제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최병일="국제적인 기준 또는 관행과 동떨어진 '한국만의 고유한, 고립된, 폐쇄적인' 각종 규제와 관행을 개혁하는 일이 시급하다. 포퓰리즘(대중인기 영합주의)적인 국내 규제를 만들어 FTA를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분쟁을 자초할 것으로 우려된다."

허윤="예측 가능한 정책을 통해 분쟁의 소지를 줄여야 한다. 논란이 됐던 서비스·투자 분야의 역진 방지(한 번 개방된 수준은 되물릴 수 없다는 것) 조항이나 투자자-국가 간 제소제도(ISD)는우리 투자자를 보호하고 제도 선진화를 앞당기는 중요한 장치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외국인 투자자로부터 제소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부 정책을 투명하고 비차별적으로 가져가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