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공사 발주 최저가 낙찰제] 업체 수익성 나빠져 부실시공… 보수비가 더 들기도

지난달 10일 오후 서울 반포동의 서울지방조달청 청사 로비에 건설단체 회원 1000여명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이들은 기획재정부가 주최하는 '최저가 낙찰제 개선방안을 위한 공청회'를 실력 저지하기 위해 모인 것. 지방에서 버스를 빌려 단체 상경한 사람들도 많았다.

이들은 '최저가 확대 결사반대' '지역경제 말살시키는 최저가 확대 폐지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과 플래카드를 흔들며 2시간 가까이 정부를 성토했다. 결국 이날 공청회는 무산됐다. 지방에서 전기공사업을 한다는 김모(45) 대표는 "지금도 경쟁이 심해 공공공사를 따봐야 세금 내고, 인건비 내면 남는 게 없다"면서 "최저가 낙찰제 확대는 중소업체에 망하라는 소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공공사에서 가장 낮은 공사비를 써낸 업체를 시공사로 선정하는 최저가 낙찰제가 건설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정부가 내년부터 최저가 공사를 더 확대하겠다고 밝혀 업계와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지난 29일에는 68개 대형 건설업체가 최저가 공사 입찰에서 허위서류를 제출했다가 무더기로 제재를 받는 일까지 벌어졌다.

건설업계는 최저가 낙찰제가 지속되는 한 허위서류 제출 같은 일이 또다시 벌어질 수밖에 없다며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예산절감을 이유로 최저가 공사 확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예산절감' vs. '덤핑경쟁 우려'

최저가 낙찰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건 2001년이다. 당시 정부는 건설산업 경쟁력 강화 등을 이유로 1000억원 이상 공공공사에 최저가 낙찰제를 처음 적용했다. 이후 2003년 500억원 이상, 2006년 300억원 이상 공사로 점차 확대했다. 정부는 내년부터 100억원 이상 공사까지 확대할 계획이지만 국회와 건설업계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친 상황이다.

정부가 최저가 낙찰제를 고수·확대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예산절감이다. 현재 최저가 대상 공사는 연간 20조원 규모다. 정부는 100억원 이상으로 확대하면 연간 4000억~5000억원의 추가 예산 절감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경쟁력 없는 부실기업이나 한계기업의 퇴출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건설업계 생각은 다르다. 기술력이나 시공능력보다는 가격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업체들로서는 '덤핑수주'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국내 10위권 대형 건설사 임원은 "갈수록 공사물량이 줄고 있어 부족한 공사실적과 연간 수주 목표를 채우려면 덤핑으로라도 공사를 따내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렇다 보니 최저가 공사의 예정가격 대비 낙찰률은 평균 70% 수준을 넘지 못한다. 가격과 시공능력 등을 함께 평가하는 턴키공사 낙찰률이 90%를 웃도는 것과 대조적이다.

중소 건설업체가 대거 도산위험에 내몰릴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현재 300억원 미만 공사는 지역경제를 떠받치는 지방 중소 건설사가 80% 이상을 수주하고 있다. 이 물량이 최저가로 전환되면 입찰 경쟁률이 치솟아 중소 건설사의 수주 기회가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 현재 100억~300억원 공사의 건당 입찰경쟁률은 이미 135대1을 넘는다.

◇예산보다 유지보수 비용 더 들어

문제는 덤핑수주가 공사 품질에도 영향을 미쳐 부실시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겉보기에는 예산이 절감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덤핑 수주로 건축물이 사용되는 전체 기간에 들어가는 보수·유지비용이 더 많이 발생해 오히려 예산낭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저가 낙찰제가 적용됐던 영동고속도로의 경우 건설비용(230억원)보다 1.7배 많은 보수비(389억원)가 들어갔고 울산고속도로 역시 보수비용(36억원)으로 건설비(18억원)의 2배가 쓰였다.

최저가 낙찰제는 공사 현장의 안전도 위협하고 있다. 2004~08년 공사현장의 평균 재해율은 0.2% 미만이었지만 최저가낙찰제로 발주된 현장은 평균 3.25%나 됐다. 재해율이 10배 이상 높은 셈이다.

정부는 덤핑 수주를 막기 위해 저가심사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지금까지 저가심사에 걸려 공사 수주를 하지 못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최저가 낙찰제 대안은 없나

이처럼 각종 폐해가 불거지자 건설업계에서는 가격만으로 모든 걸 평가하는 입찰 방식에 전면적인 수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공사의 유형과 특성, 난이도에 따라 발주처가 적합한 입찰 방식을 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건설협회 최삼규 회장은 "입찰 과정에서 투명성과 객관성만 강조하고 당장 눈에 보이는 예산을 아끼려고 하다 보니 성냥갑 같은 빌딩만 계속 짓고 있다"며 "시공사의 건설능력을 과거 공사실적과 기술자 수로만 결정하는 것도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가격과 품질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최고가치(best-value) 낙찰제'와 가격을 먼저 살펴본 후 계약이행 능력을 따져보는 '투 스테이지(two-stage)' 방식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건설산업연구원 최민수 실장은 "선진국에서는 건설업체 소속 기술자의 능력을 인터뷰한 후 평가하는 과정을 거친다"며 "계약이행능력을 포함한 업체의 도덕성·공헌도 등 다양한 평가를 거쳐서 결정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