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끈한 탕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몸은 노골노골 부드럽게 풀어지면서 피부는 탱탱한 탄력을 되찾는다. 추위를 쫓는 것은 물론이고 미용과 건강까지 챙길 수 있다. 주말매거진이 2주 전 11월 17일자에서 소개한 '피한(避寒)여행 -해외여행'편에 이어 국내에서 추위를 떨쳐버릴 수 있는 온천과 겨울맞이 호텔패키지를 특집으로 소개한다.
추위가 성큼 다가오던 지난달 25일 유황성분으로 유명한 충남 아산 도고온천 단지에 있는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를 찾았다. 추위에 감기라도 걸릴까 두꺼운 외투로 중무장하고 출발했지만, 막상 도착하니 몸을 꽁꽁 동여맨 옷차림이 무색해졌다. 탈의실을 통과해 온천탕이 있는 실내로 들어가니 뽀얀 수증기가 눈앞을 가렸다. 탕 안에 몸을 담그니 독특한 유황 향기가 살며시 코끝을 찔렀다.
20분 정도 지났을까. 물속에서 녹아내린 듯 퍼져 버린 몸을 추스르고 일어섰다. 물기를 털기 위해 팔에 손을 가져가니 미끄러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연상태 용출 온도가 35.3도에 달하는 이곳 온천에는 유황을 포함, 의학적으로 우수한 광물질이 함유돼 피부와 건강에 좋다고 한다.
이번엔 노천탕(露天湯)이 있는 야외로 나가보았다. 차가운 냉기에 피부가 살짝 어는 듯 아려왔지만 그것도 잠시뿐. 뜨거운 물에 몸을 맡기니 멀리 수확을 마친 농촌 들녘이 눈앞에 펼쳐졌다. 자연을 배경 삼아 모락모락 피어나는 뽀얀 안개속에 자리 잡으니 옛 전설에 나오는 신선·선녀라도 된 기분이 들었다. 달궈진 하체와 시원한 상체가 빚어내는 혈액순환에 뭉친 어깨가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이런 게 다른 계절에는 체험할 수 없는 겨울 온천욕의 독특한 맛이다.
우리 조상은 예로부터 땅에서 솟아나는 뜨거운 물을 건강관리에 활용해 왔다. 고려시대 김부식이 펴낸 '삼국사기'를 보면 '왕의 동생이 모반하였을 때 질병을 사칭하고 온탕에 가서 온갖 무리들과 어울려 유락(遊樂)을 즐겼다'는 고구려 서천왕 17년(286년) 때 기록이 나온다. 고려시대 목종은 중병을 앓고 있는 신하에게 온천 목욕요법을 권했고, 세종대왕은 가난한 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며 온천을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진휼정책(賑恤政策)이라 했으니 지금으로 치면 '친(親)서민 정책'쯤 되겠다.
땅 표면에 자연 용출되거나 인공적으로 땅에서 끌어올린 물의 온도가 25도를 넘는 공식 온천은 우리나라에 총 400여곳이 있다. 그 중 가장 뜨거운 온천은 경남 창녕의 부곡온천으로 물 온도가 최고 78도에 달한다. 백암온천, 척산온천, 동래온천, 해운대온천, 석모도온천 등도 수온 50도 이상의 고온(高溫)형 온천으로 분류된다.
우리나라 온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수온 30도 이하 저온형 온천이다. 전체의 약 70%에 달한다. 최근에는 바닷물을 이용한 해수탕(海水湯)도 등장했다. 땅에서 솟아난 물이 아니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면 온천이 아니지만, 짭조름한 향기가 주는 매력 때문에 찾는 사람이 많다. 25일 찾은 충남 태안군 안면도 '리솜오션캐슬 아쿠아월드'는 유황해수(海水)로 유명한 곳이다. 석양(夕陽)을 바라보며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온천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우리나라 각 지역의 대표적인 온천 및 해수탕을 물의 성분과 효능에 따라 정리해 보았다.
온천(溫泉)에 몸을 담그면 집에서 즐기는 반신욕과 달리 피부에 미끈한 느낌이 든다. 온천수가 일반 수돗물과 다른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25도 이상 고온(高溫)인 온천수는 암반 틈 사이로 순환하는 동안 암석과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처음엔 중탄산(HCO3)과 칼슘(Ca)이 많이 포함되지만 지하 깊은 곳에서 수백년 동안 머무르며 점차 나트륨(Na) 성분이 많아진다. 성분 기준으로만 보면 이렇게 형성된 중탄산-나트륨형 온천이 국내에 가장 많다.
온천은 암반 특성에 따라 제각기 다른 특징을 띠게 된다. 해안가에서 형성된 바위 틈을 통과하면 식염 성분이 많은 식염천이 되고, 철분 함량이 높은 붉은 바위에서 솟아나면 철이온(Fe2+, Fe3+) 농도가 높은 철천(鐵泉)이 된다. 암석에 황산 성분이 많거나 라듐 성분이 많으면 성질이 또 달라진다.
이처럼 온천수는 함유된 광(廣)물질 성분과 그 비율에 따라 분류될 수 있다. 국내에서는 크게 탄산천·식염천·유황천·중탄산토류천·방사능천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국내 400여곳에 달하는 온천 중 유명한 온천을 추려내 주요 성분에 따라 정리해 보았다. 체질에 따라 알맞은 온천수를 찾아 떠나다 보면 추위도 물리치고 건강도 좋아지는 일석이조의 피한(避寒)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유황천]
1㎏당 유황 1㎎ 이상을 함유하고 있다. 물이 뿌옇고 달걀 냄새가 난다. 물에서 나오면 피부가 미끌미끌하다. 만성피부병, 천식, 신경통, 호흡기 계통 질병에 효과가 있다.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 도고온천은 신라시대부터 유명해 왕실의 요양지로 각광받았다. 2008년 충청도 보양온천 1호로 지정됐다. 다양한 압력의 물줄기와 공기방울로 신체 각 부분을 자극해 물리치료 효과를 볼 수 있는 바데풀(bade pool) 등 치유시설과, 길이 150m 유수풀 등 놀이시설이 적절하게 결합돼 있다. 체질을 검진해 체질별 목욕법과 입욕 중 운동법을 안내해주기도 한다.
충남 아산 도고면 기곡리 180-1, (041)537-7100, www.paradisespa.co.kr 주말 기준 어른 3만원, 아동 2만3000원(12월 17일~2월 29일 성수기 주말 기준 어른 3만3000원, 아동 2만4000원)
♨부곡하와이: 물 온도가 최고 78도로 국내에서 가장 뜨겁다. 물론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41~47도로 식혀서 탕에 공급한다. 유황 성분이 이전보다 줄었기 때문에 정확하게는 '함유황온천'이다. 실내온천과 야외온천, 실내·외 수영장도 있다. 1979년 오픈해 1982년까지 물을 이용한 종합유원시설을 갖춘 유일한 온천으로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렸다. 입장권 한 장으로 온천은 물론 워터파크, 열대식물원, 얼음전시관 등 부대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경남 창녕 부곡면 거문리 195-7, (055)536-6331~9, www.bugokhawaii.co.kr 어른 1만6000원, 청소년 1만3000원, 아동 1만1000원. 스파니아(야외온천) 4000원 별도
[해수탕]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이 즐겨 하던 해수욕에서 유래한 사우나로, 땅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덥혀진 물을 뜻하는 엄밀한 의미의 온천(溫泉)은 아니다. 하지만 몸과 해수의 염도가 다른 점을 이용해 몸속 노폐물을 밀어내는 장점이 있고, 해수에 녹아있는 각종 미네랄이 건강에 도움된다고 해 최근에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리솜오션캐슬 아쿠아월드: 서해안 대표적인 리조트 안면도 오션캐슬에 설치된 스파 시설. 지하 420m에서 용출된 유황해수가 건강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안면도의 낙조를 바라볼 수 있는 노천탕이 큰 인기.
충남 태안군 안면읍 중장리 765-81, (041)671-7000, www.resom.co.kr/ocean/aqua/aqua.html 주말·성수기 성인 2만1000원·아동(초등학생까지) 1만6000원, 주중·비수기 어른 1만8000원·아동 1만6000원
[방사능천]
원천(源泉) 1kg당 라듐을 1억 분의 10㎎ 이상 함유하는 온천으로 '라듐온천'이라고도 불린다. 방사능천에 몸을 담그거나 마시면 만성관절염·류머티즘·통풍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대전의 유성온천지구 일대 숙박업소·사우나가 방사능천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백암고려온천호텔: 천연알칼리성 라듐성분과 나트륨·불소·칼슘 등 몸에 유익한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지하 77~330m에서 평균 온도 50도로 자연 용출되는 천연온천으로 광물질 함유량이 많아 자율신경계 기능을 강화시키고 심장 및 중풍, 피부 질환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인근에 월송정·망향정·성류굴·불영사 등 명승지가 있어 함께 여행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경북 울진군 온정면 소태리 1448-1, (054)787-3927,787-9327, www.백암온천.com 어른 6000원, 7세 이하 아동 3000원
[황산염천]
주요 음이온으로 황산이온 성분이 많은 물. 황산환원균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 피하지방 및 탄수화물을 분해하는 효과가 탁월하다고 알려져 있다. 또 장운동을 활발하게 하고 대사를 빠르게 해 지방·단백질의 흡수 자체가 낮아져 비만 치료 효과도 있다고 한다. 한편, 중독성 물질을 몸 밖으로 배출하게 하는 기능으로 인해 아토피 질환 치료의 효능이 뛰어나다.
♨사일온천: 국내 대표적인 황산염천. 많은 광물을 포함해 아연·스트론튬 ·함리튬온천 등 4가지 성분에서 합격판정을 받았다. 팔공산을 바라보고 있어 노천탕에 들어앉으면 빼어난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경북 영천 서산동 산123, (054)332-4141, www.sailspa.com 어른 6000원, 미취학 아동 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