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규의 법정이야기] 간통죄 앞에서 좌절한 서른 살 주부의 자살

작년 말 나이 서른의 김은아(가명)씨가 승용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아이 둘을 둔 주부였던 그는 승용차 안에 연탄불을 피워 자살했고, 유서를 남기지 않았다.

김씨는 남편과 이혼 소송 중이었다. 그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웠다며 남편이 먼저 이혼 소송을 냈다. 하지만 그 역시 이혼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이혼 소송을 자살의 직접적인 이유로 보기는 어려웠다. 그보다는 남편이 그를 간통 혐의로 고소한 게 자살의 원인이었다고 그의 지인(知人)들은 말했다. 무슨 사정이 있었던 것일까.

김씨가 대학선배였던 박정호(가명)씨를 우연히 만난 건 작년 초였다. 미혼인 박씨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무렵 주식 투자로 큰 빚을 진 김씨 남편은 생활비를 거의 주지 않았고 가끔 폭언까지 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학원강사와 과외 일을 병행하던 김씨는 지쳐갔다. 건강이 나빠진 그는 점점 박씨에게 기댔고,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가 됐다.

하지만 은밀한 만남은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치를 챈 김씨 남편이 김씨와 박씨를 상대로 각각 이혼 소송과 위자료 청구 소송을 냈다. 그리고 두 사람을 간통 혐의로 고소했다. 김씨는 전부터 박씨와 재혼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남편과의 이혼 소송은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

문제는 간통이었다. 박씨 부모가 알게 되면 쉽게 결혼을 허락할 리 없었다. 박씨가 간통죄 유죄 판결로 전과자가 되면 공무원이 되려는 꿈도 물거품이 될 수 있었다. 김씨의 불안은 하루가 다르게 커져 갔다. 미안한 마음에 박씨를 만나도 안절부절못했고, 결국 얼마 뒤 자살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뜨거운 쟁점인 간통죄 존폐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간통이라는 '주홍글씨'가 없었다면 김씨는 박씨와 새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의 불륜에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남편과 자녀들이 겪었을 고통을 별개로 하고, 김씨의 삶만 놓고 본다면 간통죄는 가혹한 굴레였다고 볼 수 있다.

간통죄는 논란이 많다. 위헌(違憲) 논란 속에 1990년부터 2008년까지 네 차례나 헌법재판소 심판대에 올랐다. 도덕적 비난에 그쳐야 할 '이불 속 행위'까지 형벌을 부과하는 건 개인의 성(性)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였다. 헌재는 '성도덕과 혼인·가족관계의 보호'를 이유로 모두 합헌(合憲) 결정을 내렸으나, 지난 8월 의정부지법이 다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 다섯 번째 판단을 앞두고 있다.

지금껏 우리가 간통죄를 유지했던 건 가정 유지와 약자인 여성 보호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통죄의 역기능이 만만치 않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무엇보다 불필요한 전과자를 양산하고, 협박이나 위자료를 더 받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많다. 게다가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대부분 고소가 취소돼 형벌로서의 기능도 많이 약화됐다.

여성을 더이상 일방적인 약자로 볼 수 있느냐는 의견도 있다. 법무부의 '2010 여성통계'에 따르면 간통 범죄자의 47.2%가 여성이었다. 또 간통으로 배우자를 고소하려면 이혼을 하거나 이혼소송을 제기해야 하기 때문에 간통죄가 오히려 가족 해체를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헌법재판소도 이런 사정을 감안해 "간통죄 폐지론에 대한 입법 차원의 접근이 요구된다"고 했고, 양승태 대법원장도 간통죄에 대해 "지금으로선 큰 타당성이 없는 법률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도 간통죄를 쉽게 없애지 못하는 건 간통에 대해 형사처벌 이외에 뾰족한 제재수단이 없기 때문이라고 법조계 인사들은 말한다. 우리나라 법원에서 간통한 사람에게 고액의 손해배상을 물리는 예가 거의 없다 보니 간통죄를 폐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이나 서유럽 국가에선 대부분 간통이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지만 간통한 사람에겐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물린다. 간통했다가 알거지가 된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간통죄의 '유통기한'이 다 돼 간다고 해도 아직 우리 사회에는 가정 파탄을 막을 최소한의 장치는 있어야 한다. 얼마 전엔 목사가 자신이 결혼식 주례를 선 신부(新婦)와 10년 넘게 간통한 사건에 대해 법원이 두 사람에게 징역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일이 있었다. 이런 사건을 목도하면서 무턱대고 간통죄를 폐지하자고 나서긴 어렵다.

현재 법무부는 간통죄 폐지를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형사처벌 대신 거액의 배상금으로 간통을 억제하는 방식을 한번 검토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