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노릇이 왕 노릇보다 훨씬 힘들더라

"이전 왕 연기가 편한 것 같아요. 장관은 민생 해결한다고 시장통부터 하수처리장까지 여기저기 다니는 게 쉽지 않더군요."

연산군, 수양대군, 이방원(태종), 연개소문…. TV드라마 사극에서 왕 역할을 많이 맡았던 배우 유동근(55)이 이번에는 대한민국 장관이 됐다. 7일 개봉하는 사회풍자 코미디 영화 '결정적 한방'(박중구 감독)에서다. 그로서는 7년 만의 영화 출연이다.

유동근이 연기한 '결정적 한방'의 주인공 이한국은 서민풍의 소박한 신출내기 장관이다. "관용차는 일할 때나 타라고 있는 것"이라며 지하철로만 출근하고, 지하철에서 만난 노숙인에게는 '멘토' 역할을 하다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 지각한다. 부당한 청탁을 한 여당 실력자에게는 주먹을 들고 달려드는 면모도 있다. 현실에선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모범 공직자' 역할이다.

1일 영화 시사회가 열렸던 서울 CGV왕십리에서 만난 그는 "저예산으로 시대의 건강함을 제시해보겠다는 영화의 취지가 좋았다"며 출연 이유를 밝혔다. 그는 1980~90년대에는 주로 TV에만 출연하다 2000년대 초 '가문의 영광' 등 영화를 찍었다. 그러다 2004년 '어깨동무'를 끝으로 영화판을 떠나 TV 드라마에만 전념해왔다.

유동근은 "특별히 영화보다 TV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다"고 했다. "1~2년씩 촬영하는 사극·대하드라마에 출연하다 보니 일단 시간이 부족했고, 무엇보다 '가문의 영광' 이후 (원치 않는) 조폭 역할만 많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7년이 지난 만큼 역할도 바뀌었다. '가문의 영광'에서 조폭 가문의 장남을 연기했던 그는 이번 영화에서 아버지가 되었다. 듀오가수 UN 출신 김정훈이 아들로 나온다. "집에까지 일터의 역할을 가져와 아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는, 개인적으로 볼 때는 올바르지 못한 아버지"라고 했다.

유동근은 올해로 데뷔 31년째인데도 "아버지 연기는 이제 배워가는 중"이라고 했다. 부정(父情)이 드러나는 본격 아버지 역할은 MBC 드라마 '에덴의 동쪽'에 이어 두 번째. 그는 "아버지 역할도 열 번쯤 하면 이순재, 최불암, 백일섭 선배들처럼 깊은 맛이 나지 않겠는가. 왕 역할도 그렇게 현장에서 배운 것"이라고 했다.

유동근은 자신 연기 인생의 아버지 같은 사람으로 지난 4월 작고한 '용의 눈물' 연출자 고(故) 김재형 PD를 꼽았다. 1980년 한 방송사 공채로 막 탤런트가 됐을 무렵 당시 드라마국장이던 김 PD의 음료수 심부름을 했는데, 급하게 뛰어 가져오는 바람에 콜라를 따는 순간 거품이 터져나와 곤욕을 치렀던 게 인연이 됐다고 한다. 그는 "김 PD님이 나를 집으로 불러 콘티를 손으로 베끼게 하는 등 혹독하게 훈련시켰다"며 "그때 배운 발성·걸음걸이·눈빛·손짓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했다.

유동근은 이번 영화에서 아들역으로 출연한 김정훈을 '손님'이라고 칭했다. 김정훈이 가수 출신임을 그렇게 표현한 것. "하나라도 표현해보려고 안달복달하는 모습은 좋았어요. 그래도 (연기 전문 출신인) 우리와는 달라요. (지금 연기가) 좋아서 하는 거지 아직까진 평생 연기할 사람이 아니잖아요."

유동근은 요즘 방송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너무 시청률에 연연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인기만 많으면 가수도 거리낌없이 캐스팅하는 바람에 연기만 하려는 후배들이 설 공간이 너무 좁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