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의 가장 큰 기쁨은 나를 극복한 쾌감"

"기증할 작품을 골라내 포장하고 있자면 손이 바들바들 떨려요. '이 아까운 걸 공짜로 내놓다니 내게 정신병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요. 기증은 아무리 오래 해도 '면역'이 안 생깁디다."

신옥진(64) 부산 공간화랑 대표는 '그림 기증하는 화상(畵商)'으로 불린다.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부산시립미술관, 부산시립박물관, 경남도립미술관, 박수근미술관 등에 800여점(총 시가 24억원 이상)을 기증했다. 올해부터는 국립현대미술관에도 기증을 시작, 모두 53점을 보냈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 기증자 10명 중 최다 기증자로, 5일 국립현대미술관 기증자 축제에서 '망설임에서 결정까지'를 주제로 강연도 한다. 신 대표는 "의외일지 모르지만 기증의 가장 큰 기쁨은 '나 자신'에 대한 것"이라고 했다. "갈등을 이기고 내놓고 나면 '내가 나를 극복했다'는 쾌감이 오지요. 그 희열이 말도 못해요. 게다가 '내가 미술 덕에 밥 먹고 있는데, 미술에 고마움을 표시했다'는 자부심도요."

1975년부터 화랑을 경영하고 있는 그가 기증을 시작한 것은 1998년 결핵 후유증으로 크게 앓으면서다. "곧 죽을 줄 알고 주변 정리를 해야겠다 싶어 박수근 스케치, 장욱진 수채화 등 50여점을 부산시립미술관에 기증했어요. 그런데 막상 살아나고 나니 아깝다는 생각과 함께 묘하게도 '처음 기증이라 부족했으니 앞으로는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 대표의 기증에는 원칙이 있다.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작품부터 기증한다'는 것. 이번에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작품 중 가장 아끼는 것은 이우환의 1977년 작 '선으로부터'. 20호짜리 과슈(불투명 수채 물감) 작품으로 5년 전 일본 경매에서 사들여 안방에 걸어놓고 보던 것이다. "이런 거 기증할 때는 '독한 마음' 먹어야해요. 싫증 난 작품을 기증하면 덜 아깝긴 하겠지만 기증받는 쪽에 실례지요. 나는 직업 화상이니까 안목(眼目)으로 먹고사는 셈인데, 그저 그런 작품을 기증했다가 '저 사람이 저 정도 안목밖에 없었나' 하면 창피하기도 하고."

2009년에는 아예 기증할 목적으로 일본 근·현대미술작 100여점을 사들여 부산시립미술관에 내놓았다. "내 고향 미술관에 다른 곳과는 다른 컬렉션을 만들고 싶었어요."

화상으로서 자아와 기증자로서 자아가 충돌하지는 않을까? "화상은 제게 직업이고, 기증은 그 직업을 통해 얻은 소득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문제니 별개지요. 지은 지 40년 돼 불도 잘 안 들어오는 30평 아파트에 사는데, 기증할 때마다 고민합니다. '차라리 이 그림을 팔아 새 아파트로 옮겨?' 그렇지만 인간으로 태어나 매일 자기 앞만 닦다가 죽는다면, 그 삶은 너무나 안이한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