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모던 조선'] [83] "집 업는 아희 울고 잇고나… 쌘터 노인은 富者패인가"

"집 업는 외로운 어린 아희가 / 작란감 하나도 갓지 못하고 / 손 끗을 맛잡고 셔셔 떨면셔 /찬미가(讚美歌·찬송가) 드르며 울고 잇고나 / 깃거운 성탄(聖誕)도 돈으로 사나 / 쌘터 노인도 돈밧고 오나 / 성탄의 깃븜도 부자(富者)만인가 / 쌘터 노인도 부자패인가."(1920년 12월 27일자)

1920년 연말 조선일보에 실린 '크리스마스'라는 시가 묘사한 비극적 성탄 풍경은 이 땅의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 신자들만의 기념일이던 크리스마스가 일반인들에게도 명절로 인식되기 시작한 게 1920년대 들어서였지만, 공교롭게도 많은 동포가 가난으로 허덕이던 때였다. 성탄 선물 등 크리스마스 문화의 보급은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인지 '크리스마스'와 '산타클로스'에 대한 기초적인 해설 기사가 1924년부터 1929년까지 연말이면 거의 해마다 반복하여 실렸다.

본지에서 눈에 띄는 최초의 크리스마스 풍습 해설 기사인 '싼타 클로스 령감, 어린애 선물 갓다 주는 로인'(1924년 12월 20일자)은 '산타의 선물이란 것이 실은 부모들의 속임수'라고 대놓고 쓰고 있어 흥미롭다. 이 기사는 "(싼타 령감이) '굴뚝으로 몰래 내려와서… 작란감을 준다'고 서양인 부모가 어린 자녀를 속이고 작란감을 사다가 어린애가 버서 논 보선속에 너허주는 것"이라며 "마치 어려서 우리가 자랄 때에 부모께서 섣달 금음날 자면 눈셥이 세인단다 하고는 자는 자녀의 눈셥에 분칠을 해주어 재롱을 보는 것과 가튼 풍속"이라고 썼다.

1924년 최악의 가뭄이 휩쓸고 1925년엔 서울과 중부·영남 등지에 홍수가 덮쳐 많은 이재민이 생기자 1925년 크리스마스를 맞은 교회는 '축하' 행사를 대폭 줄이고 '자선' 행사를 벌여야 했다(1925년 12월 20일자). 그래도 1925년 연말 실린 '팔판(八判)청년'의 '가정평론'이라는 글은 크리스마스의 허구성을 비판하면서, 민족의 울분까지 아슬아슬한 수위로 토로했다. 이 글은 "끼니를 걱정하며 살어가는 우리들이, 고향을 버리고 살길을 차저 헤매이는 우리들이, 또는 우리 형뎨와 부모와 동포들을 보내지 못할 곳에 보내고 안저잇는 우리들이 무슨 경황에 무슨 여유가 잇서서 명절을 명절다웁게 마즐 수 잇겟슴니가"라고 했다. "아아, 언제나 명절을 명절다웁게 마즐 수 잇는 날이 오겟습니가"라는 의미심장한 표현도 했다(1925년 12월 22일자).

1930년대 후반엔 유흥가의 '크리스마스 상술'이 문제가 된다. 카페와 바의 주인들이 '크리스마스 틔켓을 맨드러서 반 강제적으로 손님들에게 파라먹는 폐해'까지 일어나자 경찰이 단속에 나섰다(1936년 12월 4일자). 술집들이 '료리 두 가지 술 한 병'의 세트 메뉴를 1원50전(약 3만원)에 제공한다고 선전했지만, 월급쟁이들은 "장사치들이 돈버리나 좀 해볼가하는 흉계"라고 비웃었다(1936년 12월 25일자). 물론 어떤 남자들에게 크리스마스란 "엄처시하(嚴妻侍下)에서 부처 가튼 생활을 하든 '싸라리 맨'도 산문(山門)을 나려와 금단의 과일을 따러 단길 날"이기도 했다(1937년 11월 30일자).